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금산분리 완화를 전제로 산업은행 민영화를 검토하고 있다. 언론 보도는 인수위 발표를 전달하는데 그칠 뿐 정작 그 의미를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다. 현재 금산분리 완화와 관련 인수위가 검토 중인 사안은 연기금이나 펀드의 은행 소유와 중소기업 컨소시엄의 은행 지분 취득을 허용하고 산업 자본의 소유 한도를 확대하는 것 등이다.


동아일보는 이와 관련 4일, “연기금이나 펀드가 은행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은 산업자본이 직접 은행 지분을 취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재벌이 은행을 사금고화한다는 논란을 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문화일보는 3일 “대기업 집단이 사모펀드를 통해 간접적으로 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해석했다.

만약 사모펀드의 은행 소유를 허용하면 재벌 대기업이 사모펀드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은행을 간접 지배하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 금산분리 원칙이 송두리째 무너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중소기업 컨소시엄의 은행 지분 취득을 허용한다고는 하지만 이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장기적으로 대기업까지 은행 지분 취득을 허용하려는 사전 단계로 보는 게 맞다.

또한 과거 론스타 펀드의 외환은행 주식취득 논란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논란의 핵심은 왜 은행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는 사모펀드에 주식취득을 승인했느냐에 있다. 만약 사모펀드의 은행 소유가 허용되면 또 다른 론스타가 산업은행이나 곧 민영화될 우리은행 등을 인수하더라도 막을 이유가 없게 된다.

매일경제는 심지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국제협상에서도 우리나라 국책은행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에 비춰 민간이 할 수 있는 기능은 과감히 민간에 넘겨야 한다”며 산업은행의 조속한 민영화를 주문했다. 매경의 주장에는 한미FTA 체결 이후 외국 자본이 제기할 차별금지 논란에 대한 고민이 없다.

보수·경제지들의 금산분리 완화 주장에는 국책은행의 공공적 역할에 대한 고민도 찾아보기 어렵다. 매일경제는 “민영화가 정부의 부족한 재원을 메우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민영화하고 목돈을 챙겨서 부족한 재원을 메우고 나면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 등은 완전히 시장원리에 내몰리게 된다.

이미 국민은행을 비롯해 하나은행이나 신한은행 등 국내 대부분의 은행은 외국인 지분이 70%를 웃도는 상황이다. 이들 은행들은 공공성보다는 철저하게 수익 중심의 경영으로 돌아섰고 기업 대출 보다는 가계 신용대출이나 부동산 담보 대출에 치중해 경제의 동맥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지 오래다.

이명박 정부는 마지막 남은 국책은행들을 시장에 내보내려는 참이다. 그리고 이들 국책은행들은 재벌 대기업이나 지분 구조도 공개되지 않은 사모펀드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산업은행이 세계적인 투자은행으로 거듭난다고 해도 그 이익은 새로운 대주주의 몫이 될 뿐이다. 국책은행의 방만한 경영도 문제가 많지만 민영화가 그 해법이 될 수는 없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은 “최근 삼성비자금 사태에서 차명계좌 운용에 혁혁한 공을 세운 우리은행의 행태만 봐도 어째서 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이 규제되어야 하는지는 만천하에 드러난다”면서 “현재의 재벌구조 하에서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하게 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폐해는 삼척동자라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참고 : 론스타가 하면 투기, 우리가 하면 투자? (이정환닷컴)
참고 : 말 안 되는 금산분리 폐지 논의, 지겹지도 않나. (이정환닷컴)
참고 : 바보들아, 사회책임투자가 해답이야. (이정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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