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이 한국 법정에 섰다. 그가 제 발로 걸어 들어올 거라고는 검찰이나 법원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과 관련해 기소중지, 외환카드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서는 참고인 중지 상태다. 검찰은 그의 입국 이후 출국 정지 조치까지 내려놓은 상태다.

그레이켄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11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심리로 열린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 증인으로 출석한 그레이켄은 외환카드의 인수합병 과정에 아무런 위법 사실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번 재판의 핵심은 외환은행이 외환카드를 인수합병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감자 계획을 발표하고 주가가 떨어진 뒤 감자 없이 헐값에 외환카드 지분을 인수했다는 의혹을 밝혀내는데 있다.

그레이켄은 “2003년 11월 20일 처음 보고를 받았을 때는 감자 없는 합병은 계획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25일께 감자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받고 감자 없이 합병하도록 승인했다”는 것이다. 그레이켄은 감자를 하지 않게 된 이유로 “시일이 오래 걸리고 노조의 반대로 실사가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언론에 감자 계획을 흘린 것과 관련해서는 “그 당시만해도 감자가 확정적이었고 이를 언론에 알리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레이켄의 해명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도 감자를 취소하게 된 배경이 석연치 않다. 그러나 그레이켄이 “만약 범죄행위가 있다면 12억 달러에 이르는 외환은행 사업 전체는 물론이고 우리가 세계적으로 벌여놓은 사업이 크게 지장을 받을 수 있다”면서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없다”고 밝힌 부분은 설득력을 갖는다.

그레이켄은 “처음에는 부실투성이인 외환카드를 청산할 계획이었으나 금융감독원이 외환카드를 살려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고 이를 강력히 권고했다”고 덧붙였다. 그레이켄은 주가를 떨어뜨릴 의도로 의도적으로 감자 계획을 흘린 것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레이켄은 “외환카드를 인수하지 않았더라면 외환은행의 주가나 수익에는 더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제 공은 검찰에게 넘어갔다. 검찰은 그레이켄이 감자 계획을 의도적으로 흘려 주가를 낮췄다는 의혹을 검증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 론스타의 핵심 당사자가 제 발로 걸어 들어왔고 수사에 협조하고 있는데 정작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레이켄은 지난해 6월 미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론스타가 법을 어기지는 않았지만 다만 국민 정서법(cultural law)을 거슬러 문제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과 법원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다. 론스타는 어떤 범죄를 저질렀을까. 엄청난 이익을 챙긴 것? 론스타는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를 했고 시세차익을 얻었다. 이를 범죄라고 할 수는 없다. 세금을 내지 않은 것? 론스타펀드 4호는 벨기에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벨기에와 우리나라는 이중과세 방지협약을 맺고 있어서 우리나라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벨기에는 자본이득에 세금을 매기지 않기 때문에 벨기에에도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주가조작 혐의는 엄밀히 말하면 외환은행 헐값 매각의 본질은 아니다. 주가조작이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2003년의 매각 자체를 무효로 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대주주 자격을 취소할 수는 있겠지만 과거로 소급 적용하기는 어렵다. 론스타 입장에서는 대주주 자격이 취소되면 재빨리 팔고 떠나면 그만이다.

마지막으로 헐값 매각 문제는 일차적으로 이를 승인해준 우리나라 정부의 책임이 크다. 그 과정에서 정부 관료들에게 뇌물을 건네고 특혜를 받았다면 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이 역시 매각 자체를 무효로 할 만한 사안은 아니다. 적극적으로 해석해 우리나라 정부가 외환은행 지분을 강제 몰수하고 취득 원가에 이자를 더한 금액만 돌려주는 방법도 있지만 이 경우 국제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금융 산업 개방과도 거리가 있다.

이래저래 검찰과 법원의 입지는 좁다. 론스타를 감정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지만 법적으로 처벌하거나 매각을 원천 무효로 돌리거나 론스타의 천문학적인 시세차익을 돌려받을 방법은 마땅치 않다. 언론 역시 국민정서법으로 론스타를 비난하고 있지만 이런 감정적 비난으로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 합법화된 탈세, 제도화된 투기가 문제의 핵심이다. 론스타를 비난할 게 아니라 이들이 이처럼 당당할 수 있는 제도의 모순을 비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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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역시 감정적인 비판을 앞세워선 아무것도 할게 없겠죠.
    제도를 악의적으로 이용한다고 해서 그게 편법은 되어도 불법은 아니니까요

    삼성문제 역시 이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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