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은 세상을 구원할 놀라운 능력이 아니다. 그에게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력이 있고 날카로운 직관과 정확한 상황 판단, 분열을 보듬는 통솔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돼야 할 것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정의와 상식을 따르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못내 아쉬워하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그 어느 대통령보다 원칙에 충실했고 그 원칙을 지키려고 기득권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치러왔기 때문이다. 누구나 성실하게 노력하면 떳떳하게 살 수 있는 사회, 편법과 꼼수가 아니라 정당하고 합리적인 절차가 존중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게 노무현의 유일한 정치 철학이었다.
물론 노 전 대통령에게는 불만도 많다. 무엇보다도 자이툰 부대 파병을 용서할 수 없고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밀어붙인 일이나 부동산 원가 공개를 거부하고 비정규직법 보호법을 통과시키고 무력하게 시장의 압력에 굴복한 것은 그의 정치 역정에 오점으로 남았다. 언론 개혁이나 재벌 개혁도 감정적인 반발만 불러 일으켰을 뿐 결국 모두 실패했다.
그는 기득권 세력과 결코 타협하지 않았고 한계를 알면서도 그의 이상과 원칙을 꺾지 않았다. 그는 길이 막힌다고 돌아가기 보다는 느리지만 곧고 바른 길을 선택했다. 덕분에 수많은 정적을 만들었고 현실 정치에 발목이 잡히기도 했다. 그의 비참한 죽음은 그 결과다. 우리가 한 정치인의 죽음을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비통해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사람들은 그의 살아 생전 소탈한 모습을 떠올리면서 비극적인 죽음을 반추하고 슬픔을 느끼지만 더욱 서럽고 억울한 것은 이른바 노무현의 가치로 불렸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의 이상이 모두 무너져 내렸음을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는 일이다. 설령 그가 실패했을지언정 그의 가치들은 남아 이 극단적인 퇴보의 시대, 다른 한쪽을 지탱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우리가 노무현을 내보내고 ‘큰 쥐’를 대통령으로 들여앉힌 것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정의나 상식 따위가 밥을 먹여주지는 않는다는 현실적인 판단 때문이었다. ‘큰 쥐’가 마법이라도 부려서 30년 전 박정희 시절처럼 우리나라를 지금보다 훨씬 잘 살게 만들어줄 거라는 순진한 기대 때문이었다. 노무현의 죽음은 그런 순진한 생각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설령 밥을 좀 굶더라도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들이 있다는 사실, 지금보다 더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들을 더 늦기 전에 도려내고 가야 한다는 사실, 정의와 자유, 상식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사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가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고 더욱 결연하게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우리는 오늘 노무현의 죽음을 추모하는데 그치지 말고 그가 평생에 거쳐 추구해 왔던 가치들을 다시 고민하고 스스로를 반성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사회는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는 진화하는 것 같지만 가끔은 크게 퇴보하기도 하고 이를 바로 잡는데 수많은 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변화에 대한 신념이다. 노무현의 죽음은 우리에게 방관자로 뒤에 숨지 말고 역사적 주체로 전면에 나설 것을 요구한다. 좀 더 명확한 지향과 이상을 갖고 부단히 현실과 맞서 싸울 것을 요구한다. 그게 평생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웠던 올곧고 정직했던 진짜 정치인의 죽음을 맞는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