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부동산 정책이 그야말로 난도질 당했다. 13일 토지정의시민연대 주최로 열린 “인수위 부동산 정책 평가와 이명박 정부의 과제”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이 당선인의 발언과 공약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비판했다. 전 교수는 “이 당선인의 시장만능주의는 결국 부동산 투기를 방임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전 교수의 발제는 그동안 인수위원회가 쏟아낸 여러 부동산 관련 정책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구체적으로 소개하기로 한다.
첫 번째 궁금증.
내 돈 내고 더 좋은 집에 살겠다는데 왜 정부가 규제하나.
이 당선인의 부동산 정책은 “가진 사람이 더 좋은 아파트로 가겠다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맡기되 집 없는 사람들에게는 복지차원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말로 요약된다.
언뜻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전 교수는 이를 “부동산 폭등이 일어나더라도 이를 방임하라는 이야기”라고 일축한다. 전 교수는 부동산 시장은 일반 재화와 달리 공급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더라도 공급이 늘지 않고 오히려 투기적 수요만 부추기게 된다고 본다. 그래서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당선인은 “헌법이 일할 권리와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듯 국민이 집을 한 채씩 가질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 교수는 “부동산 시장을 방임할 경우 국민이 집을 한 채씩 가질 권리가 침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집값 폭등이 내 집 마련의 가장 큰 걸림돌인데 이를 그냥 두고 전 국민이 집을 한 채씩 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주택을 공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이야기다.
두 번째 궁금증. .
세금으로 부동산 가격 잡는 나라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데.
이명박 당선인이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공격하는 핵심 논리는 세금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없다는데 있다. 이 당선인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아파트 값을 세금으로 잡는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전 교수는 이 당선인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든다. 만약 세금 정책만으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라면 옳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 대책으로 세금 정책이 필요없다는 이야기라면 완전히 잘못된 주장이라는 것. 전 교수는 이 당선인의 경우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부동산 보유세나 양도세를 통해 투기적 이익을 차단·회수하지 않으면 투기 억제가 어려워진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보유세 부담이 극도로 낮다는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아파트 값을 세금으로 잡는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이 당선인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최근 중국의 투기 대책도 부동산 조세 강화가 핵심이고 2005년 미국에서도 부동산 거품에 대한 대책으로서 양도소득세 강화를 검토한 바 있다.
세 번째 궁금증.
그래도 일단 공급을 늘리면 가격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이명박 당선인이 빠진 가장 큰 함정은 공급을 늘리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오해다. 그에게는 부동산 거품에 대한 대안이 없다. 공급을 늘리는 것은 좋지만 그 과정에서 투기적 수요를 적절히 억제하지 못하면 거품이 늘어나다가 어느 순간 터지게 된다. 그때부터는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고 가격이 폭락하고 경제 전반이 동반 붕괴하는 사태로 이어진다.
전 교수는 “투기적 가수요에 맞춰 공급을 늘리면 단기적으로 투기 촉발 효과가 발생하고 몇 년 후 실제 공급이 이루어질 때는 투기적 수요가 사라져서 심각한 공급 과잉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결국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집 없는 서민들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당선인은 신도시 개발보다는 재건축과 재개발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투기를 촉발시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신도시 개발을 반대하고 있지만 전 교수는 재건축과 재개발의 경우도 여전히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재건축과 재개발은 신도시 이상으로 투기적 수요를 부채질할 가능성이 크다. 전 교수는 “신도시든 재건축과 재개발이든 핵심은 개발이익을 환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네 번째 궁금증.
서민들에게 싼 값에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일 아닐까.
이명박 당선인의 주거복지 정책에 대해서도 전 교수는 “부동산 양극화와 주거 복지의 우선 순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국내 자산 상위 10%에 속하는 계층이 전체 자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특히 최근 8년 동안 이런 부의 불평등 현상이 심화돼 왔다. 부동산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 교수는 “부동산 양극화를 방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부동산 투기를 근절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전 교수는 인수위가 딜레마에 빠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주장해 온 대로 공급 확대를 시행하자니 부동산 가격이 다시 폭등할 것 같아서 불안하고 참여정부의 정책 기조를 인정하자니 체면이 안 설 뿐 아니라 또 핵심 지지층의 요구에 반하는 것이 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인수위는 부동산 가격 안정과 거래 활성화라는 상반되는 정책 목표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다섯 번째 궁금증.
지분형 아파트 하면 당장 반값에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인수위가 계획하고 있는 지분형 아파트는 무주택 서민에게 저렴한 주택을 공급한다는 명분 아래 아파트의 지분을 51%와 49%로 나눠 51%는 실수요자에게 분양하고 49%는 재무적 투자자에게 분양하는 방식이다.
2억 원짜리 아파트의 경우, 실수요자는 1억200만 원을 내고 입주하는데 절반을 국민주택기금 대출 받으면 5100만 원만 있으면 된다는 이야기다. 재무적 투자자는 9800만 원을 내는데 자신의 지분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다. 실수요자에게는 전매제한이 있지만 투자자에게는 없다.
전 교수는 “지분형 아파트는 본질적으로 집값 안정대책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집값 폭등을 주어진 현실로 인정하고 또는 더 나아가 조장하고 그런 현실적 조건 아래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적은 자금으로 주택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더 큰 문제는 주택이 투기의 대상임을 정부가 공인하는 정책이라는데 있다. 전 교수는 “지분형 아파트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지적한다. 전 교수는 “정부가 투기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더 나아가 “투자자를 찾기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부동산 가격이 한창 뛰어오를 때도 부동산 펀드들은 주택에 큰 관심이 없었다. 임대료 수입을 얻기가 어렵고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집값이 하향 안정세로 들어가려는 시점이고 세계적으로 거품이 꺼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신이라면 49%의 지분에 투자하겠는가.
결국 지분형 아파트는 투기 지역에서는 투기적 수요를 폭발시킬 가능성이 매우 크고 그 밖의 지역에서는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은 설익은 정책이라는 게 전 교수의 평가다. 집값 안정 효과도 없고 내 집 마련 지원 효과도 극히 제한적이라는 이야기다.
여섯 번째 궁금증.
1가구 1주택 장기 보유자는 양도세를 깎아줘야 되는 것 아닌가.
인수위는 주택 거래를 활성화한다는 명분으로 1세대 1주택 장기보유자의 양도세를 경감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현재 보유기간 15년, 공제폭 45%로 되어 있는 공제한도를 보유기간 20년, 공제폭 80%로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교수는 이런 방안이 “조세정책의 원칙에도 맞지 않고, 표방한 정책 목표(거래 활성화)를 달성할 수도 없는 립 서비스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양도세는 실현된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이므로 예외 없이 부과해야 하는 이야기다.
무엇보다도 양도세를 깎아준다고 해서 거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지극히 상식적이다. 1주택자로서 6억원 이상의 주택, 그 가운데 장기보유자는 극소수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장기 보유를 위해 거래를 더 늦추는 역효과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최근의 거래 위축은 부동산 소유자들이 매각을 꺼리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 아니라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로 접어들면서 매수자들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다. 양도세를 깎아주는 정도로 거래가 늘어날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일곱 번째 궁금증.
택지개발에 민간참여하면 가격 낮아질 거라는데.
인수위의 부동산 시장에 대한 낮은 현실 인식은 택지개발에 민간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부분에서 절정을 이룬다. 인수위는 한국토지공사와과 대한주택공사 등 공기업에게만 부여해 온 공공택지 개발권을 단계적으로 민간업체에게도 부여해 경쟁을 통해 택지 공급가를 낮춰나간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민간업체들이 집요하게 요청해왔던 사안이기도 하다.
전 교수는 “공공택지 개발에 민간업체를 참여시킨다면, 경쟁을 활성화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업체의 이권 추구를 도와주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택지비는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떨어뜨릴 수 있다. 경실련 같은 시민단체에서는 토공과 주공이 엄청난 폭리를 취해왔다는 비판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핵심은 공급이 제한돼 있는 상황에서 수요가 가격을 결정하게 되고 정부가 규제를 가하지 않는 이상 택지가격이 낮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토공이나 주공의 폭리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이들이 챙기던 이익을 민간에게 넘겨주겠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사유재산을 강제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당장 위헌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주거 빈곤층 우선하는 정책 필요”
전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투기 지역의 부동산 담보 대출을 상환 능력과 연계시키는 방식의 대출 규제, 즉 미시적 금융대책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장기적으로 여러 부동산 조세를 감면하고 토지 보유세를 강화하는 패키지형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2005년 말 현재 주택보급률은 105.9%로 모든 국민이 가구당 한 채씩 내 집을 마련하고도 집 73만채 이상이 남아돌지만, 아직도 전체가구의 41.4%인 656만여 가구, 1600여만명이 셋방살이 신세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 가운데 전세가 356만가구 1000만명, 월세가 300만가구 660만명에 이른다.
전 교수는 보유세 강화 정책의 유지하고 토지임대부 주택 분양의 유지․확대 및 토지공공임대제를 시행할 것, 주거 빈곤층을 우선시하는 주거 복지 정책의 시행할 것 등을 새 정부의 정책 과제로 제안했다. 또한 공공임대 주택 공급 외에, 세입자 보호 및 주거 극빈층의 주거 상태 개선을 위한 긴급 대책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가구 1주택 종부세에 대한 제가 참여하고 있는 커뮤니티에서의 찬반 논쟁이 뜨거운데, 종부세 하락에 대한 새로운 단점도 있어서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