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통합하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핵심은 명확하다. 기초연금의 혜택을 넓히는 대신 국민연금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국민연금을 30만 원, 기초연금을 5만 원 받게 돼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은 35만 원을 다 받게 되지만 통합 이후에는 30만 원만 받게 된다는 이야기다. 인수위는 국민연금은 9%의 보험료와 40%의 급여비율을 유지하는 대신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노인의 8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한국경제는 22일 8면에 <국민연금 고갈 세금으로 막는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경제는 “정부 예산으로 국민연금 고갈을 막는 개혁이 추진된다”면서 “이렇게 하면 (보험료를)더 내고 (연금을)덜 받는 개혁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세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추진 과정에서 국민들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의 논조는 좀 다르다. 경향신문은 13면 <'국민연금 수급액 축소' 인수위 개혁안 논란>에서 “인수위의 방안은 보험료 인상 없이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 두 연금의 중복지급을 없애 재정을 안정시키겠다는 취지지만 이는 중저소득층의 연금 수급액을 대폭 깎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한신대 배준호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인수위가 검토하고 있는 국민연금 개혁의 핵심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통합이 아니라 기초연금을 빌미로 국민연금을 축소하는데 있다. 애초에 기초연금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또는 국민연금 급여가 너무 적고 국민연금만으로 살기 어려운, 그렇다고 다른 노후 대책도 없는 저소득 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인수위는 기초연금을 받는 사람은 그만큼 국민연금을 깎겠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통합으로 가장 타격을 입는 사람들이 바로 기초연금이 가장 절실한 사람들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경제가 정부 예산으로 국민연금 고갈을 막는다거나 세금 부담이 늘어난다고 비판하는 것은 맥락을 벗어난다. 더 정확하게 지적하자면 우리 중에 누군가가 부담해야 할 몫을 세금으로 돌렸다고 비판하는 게 맞다.
경향신문의 비판도 아쉽다. 경향신문 역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한다는 의미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 진보 성향의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도 보험료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국민연금을 늘 비판하지만 정작 연금 고갈에 대한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사례 1. 국민연금은 못 받고 기초연금 8만원만 받는 사람은 개편 뒤에도 여전히 8만원만 받게 된다.
사례 2. 국민연금을 30만원 받고 기초연금을 5만원 받는 사람은 지금은 더해서 35만원을 받지만 개편 뒤에는 30만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사례 3. 국민연금을 100만원 받고 기초연금 대상이 아닌 사람은 개편 뒤에도 여전히 100만원을 받게 된다.
사례 4. 국민연금 50만원을 받고 지금은 기초연금 대상이 아닌데 개편 뒤에는 대상에 편입돼 3만원을 받게 될 사람은 여전히 50만원을 받게 된다.
이들 가운데 이번 개편으로 누가 가장 타격을 받게 될까. 기초연금 대상을 넓힌다고 하지만 사례 1의 사람은 아무런 추가 혜택도 없다. 사례 2는 오히려 혜택이 줄어들고, 사례 3과 4는 그대로다. 흥미로운 부분은 개편 전과 비교해서 사례 3의 연금은 그대로 보호되지만 사례 2와 3은 줄어들고 그 부족 부분을 세금으로 메우게 된다는 사실이다. 실질적으로는 저소득 계층의 보험 급여만 줄어드는 셈이다.
국민연금 고갈의 해법은 결국 누가 지갑을 열어 더 많이 부담할 것이냐에 있다. 평균 수명은 늘어나고 인구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다들 보험료를 부담스러워 하지만 그래도 나중에 받게 될 연금은 용돈 수준이다. 좀 더 여유 있는 사람들이 좀 더 많이 내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좀 적게 내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을 보장해주는 사회적 연대와 합의가 필요하다.
지속가능하고 실질적인 국민연금이 되려면 인수위는 국민들에게 지갑을 열어 더 많이 내놓으라는 싫은 소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인수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수위는 국민연금을 축소하고 이를 세금으로 메우는 대안을 내놓았다. 개인적인 부담은 일부 줄어들지만 나라 전체의 부담은 늘어나는 방식이다. 부담이 줄어드는 것과 동시에 혜택도 줄어드는데 그 체감 효과는 저소득 계층일수록 훨씬 클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민연금을 일부 축소해 기금 고갈을 미루되 기초연금을 강화해 사각지대를 보완하자는 언뜻 파격적이고 진보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그 진의가 국민연금의 축소에 있을 거라는 의구심을 자아내기는 했지만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기초연금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아이디어는 민주노동당과도 정책공조를 끌어낼만큼 신선했다.
그런데 정권을 잡고 난 뒤 한나라당(인수위)은 말을 바꿨다. 기초연금은 강화하지 않고 정작 기초연금을 빌미로 국민연금을 깎겠다고 나섰다. 기초연금이나 국민연금 없이도 알아서 노후를 준비할 수 있을만한 사람들이 환영할만한 그야말로 실용적인 대안이다. 저소득 계층의 연금을 약탈하려는 교묘한 우파 복지개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