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이동통신 요금을 20% 인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업계 반발에 부딪혀 결국 실패했다.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동통신회사들은 변형 요금제를 출시, 적당히 구색을 맞추는데 그쳤다.
이달 26일부터 휴대전화 단말기 보조금 규제가 풀린다. 소비자들 관심은 과연 보조금이 얼마나 더 늘어날 것인가에 쏠려 있다. 이동통신 업계에서는 규제가 풀려 무한 경쟁으로 치닫기 전에 최대한 가입자를 확보해둔다는 계산 아래 막판 경쟁이 한창이다.
26일 이후에도 보조금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전반적인 전망이다. 이미 보조금 규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라 일부에서는 단말기 기종에 따라 보조금이 40만원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일부 언론은 단말기를 바꾸려면 26일 이전에 바꾸라는 친절한 조언까지 내놓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7일 <"휴대폰 사려면 이달중에">라는 기사에서 “휴대폰 구입 적기는 이달 20일까지 정도”라며 “단속이 심한 인터넷 판매보다는 집단상가가 더 저렴한 수준”이라는 판매점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소비자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지만 기사인지 광고인지 언뜻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한국경제는 17일 <45만원짜리 휴대폰도 공짜로 받는다>에서 “정부의 보조금 규제가 언제부터인가 유명무실해졌다”면서 “최근 보조금 규모는 비정상적일만큼 높아진 상태여서 보조금 규제를 폐지한 이후에도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8일 <"어떤 요금 고를까, 어떤 폰 고를까">는 좀 더 구체적이다. 동아일보는 “26일 이후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보조금을 주는 대신 1~2년의 의무 가입기간을 부여함으로써 보조금 수혜자를 줄여 마케팅 비용 절감에 나설 것”고 전망했다. 동아일보는 또 “지금까지는 최신, 고가의 폰에도 10만원 가량의 합법 보조금을 일괄적으로 지급했지만 앞으로는 이를 없애고 특정 모델을 골라 한시적으로 보조금을 주는 공짜 전략폰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조금을 둘러싼 업계의 치열한 경쟁을 다루는 기사는 많지만 정작 이동통신 시장의 과열경쟁에 대한 문제제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번호이동과 단말기 변경에 지급하는 과도한 보조금이 결국 고스란히 기존 가입자들의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비판도 거의 없다.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업체들끼리 가입자 확보 경쟁을 벌이느라 불법 보조금이 관행화됐지만 정부는 단속할 의사가 없고 언론 역시 이를 방관해 왔다.
보조금을 찬성하는 쪽은 단말기 제조업체와 SK텔레콤, KTF, 그리고 시민단체에서는 YMCA 정도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해당 업체들 마케팅 전략에 따른 것으로 시장 경쟁 원리에 맡겨두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반대하는 쪽은 상대적으로 경쟁에서 뒤쳐진 LG텔레콤과 경실련 등이다. 이들의 주장은 애초에 과점 시장이라 시장 경쟁 원리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보조금 경쟁이 벌어지면 결국 요금 인하 여력이 줄어들게 되고 결국 가입자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11일 <통신비 인하 말 나올 때마다 업체들 합작쇼 보기 지겹다>에서 보다 본질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기사의 핵심은 SK텔레콤이 50% 이상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애초에 자발적으로는 요금 인하 경쟁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 SK텔레콤 입장에서는 오히려 시장 점유율을 낮춰야 하는 상황이고 굳이 요금을 크게 인하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한겨레는 “요금 인하 경쟁이 일어나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려면 SK텔레콤이 휴대전화 시장을 다 가져가도 된다는 선언도 함께 할 것을 권하고 싶다”고 비꼬고 있다. 한겨레는 대신 “SK텔레콤으로 하여금 800MHz 대역 주파수 독점 해소 때까지 후발업체들에 주는 통신망 상호이용 대가를 할인해 주든지(할인받는 접속료를 전액 요금 인하나 통신망 투자에 써야 한다는 조건 아래), 못하겠다면 기본료를 몇 % 깎으라고 하든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겨레 역시 보조금 규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실질적인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겨레는 규제 완화를 통한 요금 인하에 부정적인 입장이면서 딱히 보조금 규제를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도 아니다. 당장 새로운 단말기를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은 보조금 지급을 늘려주기를 바라고 한겨레 역시 이에 반대하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불법 보조금을 묵인해 왔다는 점에서 한겨레나 경향신문도 다른 보수·경제지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