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건설이 국내 대기업 최초로 종업원지주회사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국제강이 주축이 된 컨소시엄이 11일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가운데 지분 15.5%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사주조합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겠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에 채권단이 매각할 지분은 자산관리공사 지분 38.8%를 포함해 50.1%. 우리사주조합은 이 가운데 24.7%에 대해 우선매수를 청구할 수 있다.
만약 우리사주조합이 이 24.7%를 모두 가져가면 40.2%, 여기에 우호지분을 더하면 과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동국제강은 25.4% 밖에 못 가져가게 된다. 동국제강으로서는 경영권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굳이 지분을 확보할 이유가 없고 중도에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사주조합은 사모펀드인 H&Q를 재무적 투자자로 끌어들여 지분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인수가격은 주당 3만원 수준, 24.7%면 2300억원 상당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 시점에서 쌍용조합 노동자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첫 번째 선택은 동국제강을 최대주주로 받아들이는 것. 이 경우는 구조조정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또 얼마나 시너지 효과가 있는냐도 따져봐야 한다. 노동조합은 당연히 회의적이다. 두 번째 선택은 H&Q와 손을 잡고 종업원지주회사로 가는 것. 이 경우는 시세차익을 노리고 들어온 이 사모펀드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 것이냐의 문제가 남는다. 노조는 일단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쌍용건설 관계자에 따르면 H&Q는 재무적 투자자일 뿐 경영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기간은 5~7년. 순수하게 쌍용건설의 주가가 저평가 됐다는 판단에서 들어오겠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매입가격이 시세보다 훨씬 비싸다는 걸 감안하면 H&Q의 설명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동국제강이 제시한 매입가격은 3만원 초반인데 15일 기준 주가는 1만7800원이다.
H&Q의 속셈은 무엇일까. 아직까지 구체적인 투자조건은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H&Q가 경영전면에 나서서 과거 다른 사모펀드들처럼 과도한 배당이나 유상감자를 요구하고 차익을 챙긴 뒤 빠져나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H&Q와 우리사주조합의 이해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진정한 종업원지주회사가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인 관측도 나오고 있다.
세 번째 대안은 우리사주조합이 직접 나머지 지분을 모두 사들이고 경영 전반에 개입하는 것인데 이 경우 임직원들의 추가 출자가 불가피하다. 쌍용건설 임직원들은 이미 2003년 3월 퇴출 직전의 회사를 살리기 위해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우리사주조합을 결성한 바 있다. 당시 주가는 2천원 수준이었는데 매입가격은 액면가인 5천원이었다. 노조 관계자는 “다행히 회사가 살아나서 다행이지만 매우 고통스러운 결정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추가 출혈을 감당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가 역시 훨씬 부담스러운 수준이 됐다. 5년 전에는 320억원이면 됐지만 이제는 그 10배를 부담해야 한다. “어떻게 살려낸 회사인데” 이제 와서 동국제강 같은 외부 자본에게 넘겨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결국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H&Q인 셈인데 과연 H&Q가 선의의 재무적 투자자로만 남을 것이냐가 관건이 된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직원들이 주식을 갖는 것과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다른 문제 아니냐”면서 “회사가 잘 돼서 주가가 오르면 직원들도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차입을 해서 직원들에게 빌려준다면 그건 배임이 될 수 있고 결국 직원들이 각자 빌려오는 방법 밖에 없는데 빌려주겠다는 데는 많았지만 다들 경영권에 욕심을 냈다”면서 “경영권에 관심이 없는 재무적 투자자는 H&Q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여러 기업들의 종업원 지주회사 전환을 지원해왔던 송태경 전 민주노동당 정책국장은 “쌍용건설은 종업원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이미 놓쳤다”고 평가했다. 훨씬 더 싼 가격에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고 이제는 자칫 사모펀드에게 경영권을 넘겨줄 우려마저 있다는 지적이다. 송 전 국장은 “노동자들이 위험 부담을 지려하지 않고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적극적인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송 전 국장은 “임직원들이 차입을 하고 회사가 부가급여 형태로 해마다 영업이익에서 차입금의 원리금을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진정한 종업원 지주회사를 만들고 더 나아가 노동자들이 직접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변혁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송 전 국장은 “쌍용건설의 경우 우리사주조합이 노동자의 경영참여라는 대의 보다는 경영진의 이해에 휘둘려 노동자들의 이해와 상반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종업원 지주회사의 성공한 형태를 꼽자면 그나마 경향신문이 있습니다. “그나마”라는 표현을 쓴 것은 경향신문 노동자들이 1998년 한화에서 회사를 인수하면서 회사의 부실을 그대로 떠 안았고 아직까지도 허덕이고 있기 때문인데요. 송 전 국장의 말을 인용하자면 “부실 기업을 인수할 때는 보통 부실과 우발채무를 모두 털어내고 인수하는데 왜 노동자들이 인수할 때는 그 부담을 그대로 짊어져야 하느냐”는 것이죠. 정부가 종업원 지주회사와 노동자의 기업 인수를 적극 지원한다면 얼마든지 발전적인 정책 대안이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경향신문이 비록 재무적으로는 열악하지만 지난 10년의 변화를 생각하면 그 의미를 다들 절감하실 겁니다. 아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도움이 되실 겁니다.)
참고 : 돈 빌려서 직원들 주식 사준다… 차입형 ESOP. (이정환닷컴)
참고 :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를 읽다. (이정환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