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한국이 이머징 마켓 17개 나라 가운데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헝가리에 이어 외환위기에 가장 취약하다”고 경고한 것과 관련, 기획재정부가 발끈하고 나섰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 11년만에 최고 기록을 갱신하는 등 금융시장 불안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획재정부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뜩이나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잡지다.


이코노미스트는 26일 발간된 최근호에서 “아시아 나라들은 대체로 안전해 보인다”면서도 “한국은 특별히 예외”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 외채 비율이 102%로 17개 나라 가운데 가장 높은데다 예금 대비 대출 비율도 130%나 돼 신용경색이 장기화될 경우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1940억달러의 외채를 상황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코노미스트는 “외환보유고가 풍부하다는 것이 버팀목이 되겠지만 불행하게도 신용경색이 장기화되면 급격히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27일 반박자료를 내고 “최근 들어 단기외채가 감소하면서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이 지난해 9월말 79%에서 지난해 말 75%(단기외채 1511억 달러, 외환보유액 2012억 달러)로 하락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기준 단기외채가 1896억달러였는데 지난해 말에는 1511억달러까지 줄어들었고 올해 들어서도 계속 감소 추세에 있어 문제될 게 없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정부가 9월 위기설이나 3월 위기설에 반박해 왔던 논리 그대로다.

기획재정부는 또 “지난해 말 국내은행의 예대율이 118.8%로 정기예금과 성격이 거의 유사한 양도성 예금증서를 예금에 포함할 경우 예대율은 101% 안팎으로 줄어든다”면서 “이는 이코노미스트가 위험평가를 위해 인용한 HSBC 보고서의 29개 나라들 평균(98%)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나라의 단기외채 비율을 102%로 예대율을 130%로 추정했으나 기획재정부는 “이는 HSBC의 올해 추정치로서 전혀 사실과 맞지 않는 수치”라고 일축했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돌입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진짜 문제는 계속해서 위기설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정부가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단 객관적인 지표들이 매우 취약한 것도 사실이고 특히 이코노미스트의 보도는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신과 오해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하는 사례다. 한국이 위험한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데 정부는 우리는 위험하지 않다는 주문만 외우고 있는 상황이다.

푸르덴셜투자증권 김진성 연구원은 “단기외채가 줄어들고 있다는 등의 해명이 위기설을 진정시키기에 역부족이라는 게 이미 확인됐는데도 정부가 내놓은 위기 관리 대책은 원론적인 수준을 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정부는 외환보유액과 통화스와프 등 안전장치가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대내외 여건의 악화속도가 빠르고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점을 압도하기 어렵다”면서 “현재로서는 정부가 가정하는 130억달러 경상수지 흑자전망도 매우 비현실적인 희망사항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원은 “정부가 수출 지원이니 외국 교육기관 유치니 의료 관광상품 개발이니 하는 것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그만큼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수단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라면서 “정부가 위기설을 대하는 태도가 기존에 반복해 왔던 입장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또 “시간이 지나면서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설 수도 있겠지만 현재는 적자 상황이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외환위기로 직행할 가능성이 거의 없더라도 시장 참가자들이 이를 우려하고 있고 실제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를 떠나기 시작한다면 근거없는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부정적인 여론을 막는데만 급급할 뿐 시장의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데는 실패했다. 이코노미스트의 보도는 한국의 금융 불안에 대한 우려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정부는 여전히 안일하고 무책임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Similar Pos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