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노동자가 아닌가. 다른 나라에서는 경찰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소방관도 만든다. 판사 노조와 변호사 노조가 있는 나라도 있고 심지어 군인 노조가 있는 나라도 있다. 교사 노조는 물론이고 교장들도 노조를 만든다.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할 권리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다.” (하종강 전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우리나라에서 노동조합은 허가 대상이 아니라 신고 대상이다. 서류를 갖춰 노조 설립 신고를 하면 특별히 문제가 없는 이상 3일 이내에 설립 인가가 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2009년 12월 설립 신고서를 낸 뒤 1년 반이 지나도록 아직 설립 인가를 못 받은 상태다. 그래서 전공노는 아직까지 법외 노조로 남아있다.

전공노가 노조 설립 신고를 내던 날, 경찰은 전공노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공무원법 위반 혐의를 조사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공공부문 노조의 불법 행위에 엄정 대처해야 한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노조 설립 신고서가 접수되자마자 행정안전부는 양성윤 위원장을 해고하고 전공노 사무실을 모두 폐쇄했다.

지난해 3월 전공노 출범식을 강행한 노조 간부를 무더기로 파면·해임한 데 이어 지난해 5월에는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기소된 공무원과 교직원들이 무더기로 징계됐다. 지금까지 노조활동을 이유로 징계를 받은 전공노 조합원은 3002명, 이 가운데 140명이 해고됐다. 행안부는 정부 부처와 관공서에서 전공노 홈페이지 접속을 차단하기까지 했다.

고용노동부가 전공노의 노조 설립 신고를 반려한 건 해고자들과 다른 공무원의 업무 수행을 지휘·감독하거나 총괄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직책의 공무원들이 조합원으로 포함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노동부는 반려 사유가 해결될 때까지 노조 설립 인가를 보류하겠다고 통보했고 지난해 7월 서울행정법원은 전공노의 설립 신고를 반려한 것은 타당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일보는 지난해 3월 사설에서 “정부가 전공노의 노조 설립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전공노는 법적 요건에 맞춰 설립 절차를 밟아야 하며 그럴 의사가 없다면 노조 설립은 포기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서울신문은 “법을 집행하는 위치에 있는 공무원들이 스스로 법을 어겨가며 억지를 부리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후원 논란과 관련, 동아일보는 심지어 “친북 성향이 짙은 이른바 진보정당과 공무원 노조가 사실상의 정치적 결사를 이룬 궁극적 목표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 검찰 수사의 핵심”이라면서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이들에게 신분 박탈을 비롯한 엄한 징계 조치가 따라야 마땅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공노에 대한 언론 보도는 기본적인 사실 관계가 틀렸거나 왜곡된 경우가 많다. 허가를 받지 않았으니 불법이라는 논리는 애초에 노조법 자체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한다. 정치적 중립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애초에 제도의 취지나 해외 사례 등을 일부러 누락하고 본질을 호도하는 경우가 많다.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노동부는 반려 사유와 시정 명령 대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노동조합법에서 예외적으로 인정한 반려 사유가 아닌 이상 설립 신고서를 교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합원의 범위는 노조법이 정한 노조 결격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권 변호사는 “노동부는 전공노의 노조 설립 신고서 반려 처분을 취소해야 하며 그럴 수 없다면 소송이 끝날 때까지 전공노의 지위를 인정해 자유로운 노조활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변호사는 “행안부 역시 전공노의 지위를 인정하고 위법적인 탄압을 중단하는 한편, 단체교섭에 성실하게 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노조법에서 노조 설립을 노동부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은 노조 설립을 심사해서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노조가 노조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권 변호사는 “신고제를 마치 노조 설립 허가의 근거 규정처럼 자의적으로 판단해 노조 설립을 제한하려는 태도는 법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해고자들을 조합원에 포함시킨 것은 노조 전임자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부당 해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다 이들을 복직시키기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무엇보다도 노조 자율로 결정할 문제를 노동부가 개입해 노조 설립 인가를 미루는 구실로 삼는 건 옳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휘·총괄 업무를 맡은 공무원들은 노조 가입 자격이 없다는 판단 역시 노조가 결정할 문제로 노동부 등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용자의 부당한 개입을 막으려는 규정이 노조 설립을 가로막는 규정으로 원칙과 취지가 뒤바뀐 셈이다.

전공노의 민주노동당 후원을 둘러싼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법원은 지난 1월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낸 공무원과 교사들에게 30만~5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정당에 가입해 공무원의 중립 의무를 어겼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정당 명부를 확인할 수 없거나 공소 시효가 지났고 단순 후원회원의 경우는 불법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보수 언론의 공격은 계속됐다. 조선일보는 “공무원의 정당 가입을 인정하면 겉으로는 국민의 선거로 선출된 정부 정책을 집행하는 척하면서 여러 방식으로 자신이 당원으로 있는 정당의 정책을 선전·전파하는 역할을 하는 모순이 빚어진다”면서 “세계 어디 공무원 노조 가운데 이렇게 요란을 떨며 국민을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느냐”고 비판했다.

국민일보는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린 채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해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법치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라고 지적했고 동아일보는 “민주노동당의 주축은 김일성 주체 사상을 신봉하는 주사파 계열”이라면서 “신분을 보장 받는 공무원이 헌법적 가치를 부인하는 정당의 당원이 되는 것은 국민이 용납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들 신문들은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공무원의 정당 가입과 정치활동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도 당직을 맡는 등 일부 정치활동을 제한할 뿐 정당 가입을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정당 가입을 제한하는 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우리나라에서 공무원들의 정치활동을 제한한 건 과거 군사독재 시절, 공무원들이 야당을 지지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공무원 가족들이 여당 당원이 되는 게 자연스럽던 시절에 만든 제도였다. 정치적 중립을 형식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정치 참여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제도로 변질된 셈이다.

전공노는 지난 2월 공무원의 정치참여를 금지한 정당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낸 바 있다. 전공노는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정당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박탈할 합리적 이유가 없으며 특히 정당 가입 자체를 형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법익의 균형성도 갖추지 못한 국가형벌권의 과도한 행사로 과잉침해금지 원칙에 반한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도 공무원들의 기본권 제약이 지나치다는 데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공무원들이 개인적으로 정당에 가입하는 것이 공직을 수행할 때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지키는 것과 충돌한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다른 나라들처럼 정당 가입을 허용하는 게 맞다는 의견이 학계에서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계수 건국대 교수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의 필요성을 근거 짓는 논거들은 결국 공무의 공정하고 중립적인 수행을 요청하는 것들이지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하는 논거들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정치적 중립이란 정치활동의 금지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보장하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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