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되살아난 촛불은 이명박 정부의 퇴진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가 끝나고 운구행렬이 빠져 나간 뒤 오후 4시께 경찰이 시청광장 오른쪽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주변에서 치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줄어든 틈을 타서 다시 광장을 봉쇄하려고 나선 것. 시민들은 물병 등을 던지면서 맞섰고 경찰들도 방패를 휘두르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광장을 사수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밤이 깊어 가면서 시민들이 줄어들면 경찰이 다시 광장을 봉쇄하러 밀고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상당수 시민들은 밤을 새서 광장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광장을 사수할 수 있을 것인지는 미지수다. 이날 오후와 비교하면 집회 참가 인원은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든 상태다. 29일 저녁 시청광장은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넘쳐나고 있다.

이날 광장 동쪽에 설치된 자유발언대에서는 이명박 정부를 성토하면서 강력한 투쟁을 이어가자는 발언이 쏟아졌다. 1년 전 광우병 촛불시위와 비교하면 발언의 강도도 더욱 세졌고 이날 오후의 비통하고 숙연한 분위기와도 또 달랐다. 노무현 사후 민심의 향방이나 정국이 이명박 정부에게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주말인 30일에는 용산참사 범국민대회와 공공운수연맹 집회 등이 예정돼 있다.

공공운수연 맹 조합원이라고 밝힌 40대 남성은 “이제는 말로만 하지 말고 나설 때”라면서 “뜨거운 불길에 산화한 용산 철거민들과 30원에 목숨을 내던져야 했던 택배 기사, 등록금이 없어 목을 맨 대학생,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이들의 희생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분의 가슴 속에 조그만 불씨를 모아 이 오만한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고 꾸짖고 국민의 힘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대학로에서 연극배우로 일하고 있다는 전아무개씨는 “부인과 자식들을 검찰에 보내는 것은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라면서 “죄를 지으면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하지마 노 전 대통령은 명백한 정치 보복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씨는 “만약 노 전 대통령이 5년 더 집권을 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서울대 농대 재학 중이라는 한 학생은 “일주일 내내 닫힌 광장을 넘겨다 보면서 민주주의를 빼앗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은 그와 반대된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결국 이 사회를 바꿔나갈 힘은 우리 민중에게서 나온다는 걸 다시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선배들의 저항이 멈춘 게 아니라 계속해서 살아 숨 쉬고 흘러가는 것”이라면서 “더 이상 물러서지 말고 선배들이 흘린 피를 함께 지켜나가자”고 강조했다.

건국대 학생이라고 밝힌 한 여학생은 “어제 고대녀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김지윤씨가 집시법 위반으로 경찰에 연행됐다”면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이명박 정부와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를 살리겠다던 이명박은 경제를 사망시키고 있는데 백화점 명품코너는 여전히 호황이고 기업은 살리고 서민들은 죽이고 부자들은 감세하면서 대학생 등록금은 왜 안 깎아주느냐”고 외치기도 했다.

30대 후반의 한 남성은 마이크를 잡더니 “오늘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면서 “살아있는 이명박은 죽은 것 같고 죽은 노무현은 살아있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대학생이라고만 밝힌 한 남학생은 “내일 이곳에서 범국민 대회가 열린다”면서 “이곳 시청을 내일까지 지켜서 이명박 심판 대회장으로 만들어가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내일 집회를 계기로 등록금 반대 투쟁을 조직화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1년 전 촛불집회가 광우병 쇠고기라는 집약된 현안에 매달렸다면 노무현 사후의 집회는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 용산 참사, 부자 감세 등 광범위한 현안이 걸려 총체적인 정권 반대 투쟁의 양상을 띤다는 차이가 있다. 그 때문에 일반 대중을 동원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고 오히려 조직된 노동자들이 전면에 나서서 강도 높은 투쟁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좀 더 적극적인 견해도 있다.

결국 관건은 이곳 광장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의제를 조직화하고 세력을 키워 정부를 강도 높게 압박하느냐, 그리고 경찰과 대치에서 어떻게 우위를 차지하고 투쟁 동력을 계속 이어가느냐의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두려워하는 것도 추모 열기가 정치 투쟁으로 확산돼 거대 여당이 여론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촛불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는 상황이다. 1년 전보다 훨씬 거세고 강렬한 촛불이다.

Similar Pos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