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TV 시대, TV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올해 초 애플의 태블릿 컴퓨터 아이패드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종이신문이 위기를 맞게 됐다고 전망했다. 사실 신문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아이패드는 신문의 종말이 머지않았음을 짐작케 했다. 구글이 지난달 20일 구글TV를 공개하자 사람들은 이제 TV의 종말을 예측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TV를 켜면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찾아 채널을 돌리거나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구글은 이제 채널을 돌리지 말고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검색해서 불러오라고 말한다. 언제 어디서나 당신이 찾는 프로그램이 바로 시작된다. TV가 컴퓨터와 결합한다. 구글은 구글TV로 이른바 스마트TV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물론 구글TV에 대해서는 기대와 실망이 엇갈린다. 혁신적이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지금까지 나왔던 인터넷TV와 뭐가 다르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많다. 신문산업과 달리 TV시장은 아직 광고시장이 살아있기도 하고 진입장벽이 결코 만만치 않을 거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존의 TV사업자들이 구글TV를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글TV는 TV와 컴퓨터를 결합한 형태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인텔과 소비, 로지텍 등이 공동 개발하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여기에도 들어간다.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은 물론이고 유튜브와 아마존, 넷플릭스 등의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도 크게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구글TV는 TV를 웹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구글TV를 켜면 크롬이 뜬다. 크롬은 구글이 개발한 웹 브라우저다. 이제 사용자들은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찾을 때까지 이리저리 채널을 돌릴 필요가 없다. 검색창에 보고싶은 프로그램을 입력하거나 즐겨찾기에 저장된 아이콘을 클릭하면 된다. 화면이 크고 거리가 멀긴 하지만 컴퓨터로 웹을 서핑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를테면 월드컵 축구 중계를 보다가 상단의 검색 창에 ‘박지성’이라고 입력해 보자. 곧바로 경기 장면 위로 관련 콘텐츠의 목록이 뜬다. 박지성 선수의 최근 인터뷰 동영상이나 경기 분석과 전망은 물론이고 그가 신고 있는 축구화 등에 대한 정보가 뜰 수도 있다. 박지성 선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온라인 게임을 실행할 수도 있다.

TV 드라마를 보다가 출연 배우가 입고 있는 셔츠를 구매할 수도 있고 시청자 의견을 보내거나 다른 시청자들 의견을 볼 수도 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위키피디아를 띄워서 바로 찾아보면 된다. ‘백분토론’을 보면서 트위터로 다른 시청자들과 논쟁을 벌일 수도 있고 즉석에서 설문조사나 찬반투표를 실시해 여론을 수렴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금까지는 멍하니 앉아 들여다보기만 했지만 이제는 본격적인 쌍방향 TV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본방사수’를 하고 난 뒤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서 이뤄졌던 논쟁이 이제 방송 도중에 벌어진다. 수천수만명이 어울려 함께 떠들면서 TV를 보게 된다. 시청자들이 직접 퀴즈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고 노래자랑 프로그램의 채점자가 될 수도 있다.

구글은 구글TV 출시와 함께 크롬 웹스토어를 공개했는데 구글TV가 지금까지 나왔던 인터넷TV와 다를 거라고 기대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크롬 웹스토어는 애플의 앱스토어나 아이튠즈처럼 개발자들이 직접 프로그램이나 콘텐츠를 판매할 수 있는 열린 장터다. 판매수익은 판매자와 구글이 각각 7 대 3으로 나누게 된다.

애플 앱스토어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 날개를 달아줬던 것처럼 웹스토어는 구글TV의 활용도를 크게 넓혀줄 것으로 보인다. TV로 게임과 쇼핑, 주식매매, 인터넷 뱅킹은 물론이고 문서작성과 편집, 메신저 채팅, 화상전화 등 컴퓨터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애플 앱스토어처럼 수십만개의 어플리케이션이 쏟아져 나올지도 모른다.

구글TV는 방송시장의 생태계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방송사들은 무료로 방송을 송출하는 대신 엄청난 광고수입을 챙겨왔다. 그러나 스마트TV 시대에는 채널이 무한대로 늘어나고 아예 채널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게 된다. 철저하게 개별 콘텐츠 단위로 판매되고 소비되는 시대가 됐다. 시청자들은 이제 채널을 소비하지 않고 콘텐츠를 소비한다.

이제 독립영화를 만드는 제작자도 직접 웹스토어에 영화를 올려놓고 소비자들과 직거래를 할 수 있게 됐다. 유튜브 동영상 하나도 잘 만들면 돈 벌이가 될 수 있다. TV를 무한정 틀어놓고 보지 않기 때문에 광고효과도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방송사들도 새로운 수익모델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됐다는 이야기다.

구글TV의 등장은 인터넷과 방송, 통신의 경계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다. 컴퓨터를 만들던 애플이 통신시장을 순식간에 장악한 것처럼 검색 사이트 구글이 방송시장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지도 모른다. 구글의 매출 대부분이 인터넷 광고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KBS와 MBC, SBS가 구글과 경쟁하는 시대가 됐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스마트TV, 낙관은 이르다.
게으른 소비자 습관이 가장 큰 걸림돌.

스마트TV에 대해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도 소비자들의 습관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소파에 기대 앉아 아무 생각없이 리모컨을 눌러대던 소비자들이 거추장스러운 키보드와 마우스에 적응하려고 할까. 채널 11번을 틀면 되는데 굳이 키보드를 꺼내서 검색창에 ‘동이’라고 입력하려고 할까.

화면이 넓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작은 글씨는 입력하기도 힘들고 보기도 힘들다. 굳이 TV로 인터넷 서핑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적인 반응도 있다. 물리적 거리가 멀기 때문에 TV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TV로 트위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소파에 앉아서 멀리 떨어진 작은 글씨를 들여다 보는 건 꽤나 피곤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IPTV가 전망만 무성했을 뿐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던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콘텐츠가 부실했던 탓도 있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지상파 방송 ‘본방사수’를 즐긴다. ‘TV는 공짜’라는 인식도 확고해서 드라마를 보는데 추가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거부감이 상당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구글TV는 셋톱박스 형태로 공급하거나 아예 TV에 내장하는 형태도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가격이 관건이다. 하드웨어 사양을 보면 300달러 이하로 가격을 낮추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 비슷한 기능의 디지털 셋톱박스를 100달러 미만에 구매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무료로 영화를 제공하는 훌루 같은 사이트가 구글TV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

애플 아이폰처럼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인지도 관건이다. 휴대전화는 교체주기가 매우 짧지만 TV는 10년 이상이다. 소비자들이 지금까지 잘 쓰던 TV를 버리고 구글TV를 살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구글TV는 복잡하고 어렵다는 인상을 준다. 차라리 컴퓨터를 한 대 사서 TV에 연결하는 게 효율적일 수도 있다.

구글이 왜 소니와 손을 잡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보기술 전문 인터넷 신문 시넷은 “구글이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을 배제한 게 아니라 이 회사들이 러브콜을 거절한 것 같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소니, 어느 회사의 선택이 옳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지만 이런 경쟁구도에서 구글이 지배적인 프레임으로 자리잡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조만간 애플이 출시할 것으로 차세대 애플TV에 대해서도 온갖 추측과 전망이 무성하다. 애플은 이미 2007년에 애플TV라는 이름으로 셋톱박스를 출시한 바 있는데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러나 99달러에 출시될 예정인 차세대 애플TV는 ‘스크린 없는 아이폰’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벌써부터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정보기술 전문 인터넷 신문 지디넷은 “애플은 경쟁업체들과 비교해 콘텐츠 유통에서 우위가 있다”면서 “TV는 애플에게 그냥 놔둘 수 없는 중요한 시장”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미 앱스터어와 아이튠즈로 탄탄한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구축한 애플이 TV 시장에 뛰어들 경우 구글TV와는 또 다른 충격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주먹구구식 종편 전략, 발상을 바꿔야 한다.
공짜 방송, 광고 수익모델에 한계… 플랫폼 사업자를 잡아라.

스마트TV 시대에 시청자들은 KBS나 MBC, SBS, 또는 채널 6번이나 9번, 11번 등을 소비하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동이’를 소비하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세바퀴’나 ‘무한도전’을 소비한다. 어느 방송사에서 만든 프로그램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언제라도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불러오면 되기 때문에 굳이 시간 맞춰 TV 앞에 앉을 필요도 없다.

네트워크 비용이 낮아지면서 이제 스트리밍 방식의 동영상 재생도 비용 부담이 크지 않게 됐다. 외국에서는 이미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가 보편화돼 있기도 하다. 속도도 계속 개선돼서 지연시간이 크게 줄어들었다. 인터넷이 지상파를 대체하는 ‘올 IPTV’ 시대가 열릴 거라는 성급한 전망까지 나온다. 올 IPTV 시대가 되면 DMB 서비스도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은 “방송시장의 헤게모니가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SK텔레콤과 KT 중심의 통신시장 헤게모니가 무너졌던 것처럼 구글TV 같은 스마트TV가 자리를 잡으면 KBS나 MBC 같은 유통 사업자보다 플랫폼 사업자들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거라는 이야기다.

강 연구원은 특히 “스마트TV 시대에는 구글이나 애플 같은 플랫폼 사업자들이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강 연구원은 “그동안 IPTV가 지지부진했던 건 말로만 쌍방향TV라고 떠들면서 실제로는 쌍방향성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고 특히 결제 수단이 마련돼 있지 않아 써드 파티 개발자들이 참여할 유인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구글TV는 웹스토어를 통해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애플 앱스토어를 벤치마킹한 것이지만 구글이 직접 만들지 않아도 수많은 개발자들이 기상천외하고 재기발랄한 TV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낼 것이고 구글은 이들에게 기꺼이 수익을 배분해 줄 것이다. 새로운 콘텐츠 생태계가 조성될 텐데 기존의 방송사들은 여기에 끼어들기가 쉽지 않다.

이성규 매일경제 미디어연구소 연구원은 “방송사들이 고비용 구조에도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진입장벽이 높은데다 광고시장을 과점형태로 분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광고시장이 무너지면 방송사들도 변화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진순 한국경제 기자는 “신문에게 아이패드가 큰 도전이 됐듯이 TV도 얼마든지 그런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기자는 “기존의 수익모델이 무너지고 있는데 기존의 방송사들은 물론이고 종합편성채널 진출을 준비하는 신문사들이 새로운 콘텐츠와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최 기자는 “구글TV가 시장에 안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기자는 “기존의 사업자들은 기존의 수익모델에 안주하려고 할 것이고 소비자들도 기존의 소비 패턴을 쉽게 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새로운 수익창출의 기회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 누가 그 기회를 잡을 것인지는 불분명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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