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온라인 서점 아마존이 TV 시장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이폰으로 세계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애플이 애플TV를 내놓았고 검색 사이트 구글은 TV를 컴퓨터로 바꿔놓겠다고 선언했다. 방송사들은 자체적으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고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들은 셋톱박스를 들고 거실로 뛰쳐나왔다. 가전제품 제조회사인 소니도 최근 방송 콘텐츠 사업에 뛰어들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디스플레이서치 자료에 따르면 올해 판매되는 TV 2억대 가운데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이른바 커넥티드TV가 4천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내년에는 7천만대, 2014년이면 1억6000만대까지 늘어나 점유율이 50%를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스마트폰이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을 뒤흔들어 놓은 것처럼 스마트TV가 TV시장을 완전히 잠식하게 될 거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변화는 단순히 TV에 인터넷을 연결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제 보여주는 대로 보는 TV가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골라보는 TV의 시대가 됐다. 채널이 사라지고 유통 플랫폼이 분화되면서 기존의 권력관계와 질서가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다. 이제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어디에서 어떻게 파느냐가 중요하게 됐다. 새로운 기회가 널려 있지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애플은 일찌감치 지난 2007년 아이TV라는 이름으로 TV 셋톱박스를 출시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아이TV는 컴퓨터에 연결해 동영상을 내려 받아 TV 화면으로 보는 방식이었는데 번거롭고 불편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아무리 매력적인 콘텐츠가 풍부하다고 한들 TV에서 뭔가를 보기 위해 컴퓨터를 켜야 한다는 건 귀찮은 일일 수밖에 없다. TV 시청 습관을 이해하지 못한 게 실패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런 애플이 최근 애플TV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셋톱박스를 내놓았다. 과거의 실패를 반성한 듯 다운로드 방식에서 스트리밍 방식으로 바뀐 게 가장 큰 변화다. 컴퓨터에 연결할 필요 없이 TV 화면에서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곧바로 재생이 된다. 하드디스크를 들어낸 덕분에 크기도 줄어들었고 가격도 299달러에서 99달러로 낮아졌다. 애플TV는 스마트TV의 사전 실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애플TV에서는 HD 화질의 최신 개봉 영화를 4.99달러, 좀 오래된 영화는 3.99달러, ABC와 BBC, FOX 등의 방송 프로그램들은 0.99달러에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크게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아직까지 방송 다시 보기 서비스가 없었기 때문에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문제는 얼마나 풍부한 콘텐츠를 확보하느냐인데 NBC 등 일부 방송사들은 가격이 너무 낮다는 이유로 참여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콘텐츠 임대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한 번 결제를 하면 30일 이내에 첫 재생 시점부터 48시간 동안만 볼 수 있다. 나중에라도 다시 보고 싶으면 다시 결제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불법 다운로드나 유통을 원천 차단하고 방송사들의 불만을 달래는 방법도 된다. 애플TV는 향후 월 정액 30달러 정도에 인터넷 방송 서비스도 시작할 계획인데 결국 방송사들과 콘텐츠 전송료 협상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구글은 애플과 전혀 다른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아직 공식 출시는 안 됐지만 최근 소개된 구글TV는 애플TV보다 훨씬 컴퓨터에 가깝다. 키보드가 달려 있고 구글이 만든 웹 브라우저 크롬이 내장돼 있다. 부팅을 하면 ‘퀵 서치 박스’라는 검색 창이 뜨는데 검색을 하면 TV 프로그램과 웹 검색 결과가 섞여서 뜬다. 검색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TV 시장으로 그대로 이어가려는 구글의 전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애플이 직접 TV를 제작하는 것과 달리 구글은 플랫폼을 무료로 공개해서 여러 TV 제조회사들이 이를 채택하도록 하는 전략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의 대결 양상이 그대로 스마트TV 시장으로 넘어온 셈인데 스마트폰과 달리 이처럼 복잡한 기능과 인터페이스가 TV 시장에서도 먹혀들 것인지는 의문이다. 구글TV는 TV의 진화라기 보다는 단순히 컴퓨터에 TV 기능을 집어넣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애플은 콘텐츠 판매 수익을 콘텐츠 생산자와 나누는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있는데 구글은 검색을 전면에 내세웠을 뿐 아직까지 아무런 콘텐츠 확보 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구글은 콘텐츠 판매 보다는 검색 광고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과연 사람들의 습관이 쉽게 바뀔 것인지도 의문이다.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여주는 대로 보는데 훨씬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다음달 12일 세계 최초로 구글TV를 공식 출시하는 소니는 큐리오시티라는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를 선보였다. 운영체제는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쓰지만 콘텐츠 유통 플랫폼은 직접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비디오와 음악, 게임 등의 콘텐츠를 판매하고 생산자와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소니는 지난 4월 미국 서비스를 시작한데 이어 올해 안에 유럽 전역으로 서비스를 넓혀나간다는 계획이다.

소니에 선수를 빼앗긴 삼성전자는 일단 구글TV에 합류하되 장기적으로 자체 운영체제를 키운다는 전략이다. 굳이 구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플랫폼을 구축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판단이겠지만 업계의 평가는 엇갈린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삼성 앱스라는 이름으로 미국과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 유료 어플리케이션 서비스를 시작했다. 세계 최초라는 건 주목할 만하지만 어플리케이션의 종류가 적고 반응속도가 느리다는 지적이 많았다.

향후 스마트TV 시장의 지형이 애플이나 구글 같은 단일한 플랫폼에 집중되는 형태가 될 것인지 여전히 콘텐츠 생산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혼쭐이 난 적 있는 가전제품 제조회사들의 대응도 주목된다. 분명한 것은 누가 이 새로운 시장에서 헤게모니를 차지하느냐를 두고 한동안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 시스템에 엄청난 변화가 불어 닥칠 거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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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Comment

  1. ‘애플이 직접 TV를 제작하는 것과 달리 구글은 플랫폼을 무료로 공개해서 여러 TV 제조회사들이 이를 채택하도록 하는 전략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 최소한 현재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고 앞으로 그렇게 할지도 좀 의문입니다. 구글TV는 모르겠지만 이미 다양한 제조사들은 안드로이드를 사용한 TV는 많이 개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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