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는 치료약이 없다. 감기 바이러스의 종류만 200종이 넘는데 이를 선택적으로 죽이는 치료약이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흔히 먹는 감기약은 그래서 열을 낮추고 두통을 없애거나 기침과 재채기, 콧물 등을 멈추는 정도에 그친다. 감기약을 먹어도 언뜻 낫는 듯하면서 잘 낫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바이러스와 세균은 다르다. 바이러스는 숙주에 기생해서만 자신의 유전 정보를 복제하고 증식할 수 있다. 단백질 형태로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호흡기를 타고 들어와 세포와 결합할 때 생명력을 갖게 된다. 세균을 잡는 항생제는 바이러스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 바이러스를 잡으려면 항생제가 아니라 백신을 써야 하지만 아직까지 감기 바이러스를 잡는 백신은 개발되지 않았다. 항생제는 세균성 합병증에만 효과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무 생각 없이 항생제를 처방하고 생각 없이 이를 받아먹는다.

독감은 감기와 또 다르다. 독감은 독한 감기의 줄임말이 아니라 인플루엔자를 우리 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든 말이다. 최근 언론이 조류독감이라고 쓰지 않고 굳이 조류 인플루엔자라고 쓰는 것은 조류독감이 인체에 감염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는 그런 믿음을 독자들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독감이라는 말이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인플루엔자라고 쓰는 것이지만 사실은 독감이나 인플루엔자는 정확히 같은 말이다.

분명한 것은 이 바이러스를 우리가 조류독감이라고 부르든 인플루엔자라고 부르든 이미 조류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전염이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바이러스는 75도 이상의 고온에서 3초 이상 가열하면 죽는다. 그러나 조류독감에 감염된 조류와 직접적으로 접촉하거나 배설물이 말라서 미세 먼지 형태로 떠다닐 때 이를 들이마시면 전염될 수 있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처음 확인된 때는 1996년. 그때만 해도 조류독감은 조류에게만 감염된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그런데 그 이듬해 조류독감에 감염돼 죽은 첫 번째 환자가 홍콩에서 나타났다.

중세의 페스트가 쥐에게 옮는 병이라면 21세기의 조류독감은 새에게 옮는 병이다. 오리나 닭 뿐만 아니라 계절 따라 오가는 철새들이 세계 곳곳에 이 치명적인 질병을 실어 나른다.

문제의 바이러스는 H5N1이라는 유전자 번호로 불렸다. H는 헤마글루티닌의 줄임말로 적혈구와 결합해 숙주의 세포에 들러붙는 역할을 하고 N은 뉴라미니다아제의 줄임말로 세포에 침입하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HA 항원은 15가지, NA항원은 9가지가 있는데 사람이 걸리는 독감은 흔히 H1과 H2, H3 그리고 N1과 N2의 조합으로 이뤄진다.

문제의 조류독감은 H5N1이다. 사람의 세포막을 뚫을 수 없다고 알려졌던 H5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된 것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도 감염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1997년 홍콩에서는 18명이 감염돼 6명이 죽었고 그해 겨울에는 수많은 닭과 오리가 죽었다. 홍콩은 추가 전염을 막기 위해 그해 겨울 160만마리의 새를 죽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류독감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된다고 볼 증거는 없었다.

조류독감은 한동안 잠잠했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들 쉬쉬하고 있을 뿐이었다. 2003년 겨울 우리나라에서 H5N1 바이러스가 발견됐고 이 사실이 알려지자 그때서야 아시아 곳곳에서 조류독감의 사례가 보고되기 시작했다. 베트남과 태국에서 사망자가 나왔다고 보고됐고 그 이듬해에는 태국에서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된 사례가 처음으로 보고됐다.

(그 무렵 태국 정부의 반응은 주목할 만하다. 태국 최대의 육류 수출업체인 차룬 폭판드의 주가가 8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자 태국 언론은 “차룬 폭판드가 재채기를 하면 경제계 전체가 감기, 아니 독감에 걸린다”고 썼다. 태국 정부는 영세 농가들의 몰락을 방치하고 차룬 폭판드를 중심으로 한 공장형 사육으로 양계 시스템을 집중시켰다. 뒤에 다시 쓰겠지만 조류독감의 발원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대형 양계 시스템이다.)

조류독감은 이제 새들끼리 뿐만 아니라 새에서 사람으로, 그리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된다. 닭이나 오리는 한꺼번에 몰아넣고 죽일 수라도 있지만 하늘의 모든 새들을 어떻게 다 죽인단 말인가. 게다가 사람에게 전염되기 시작하면 격리하는 것 말고는 아무 방법이 없다. 바이러스는 사람이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체액 방울의 형태로 전염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체 인구의 최소 25%가 감염되고 1%가 사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최상의 가정이고 최악의 경우 사망자가 10억명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18년에 세계를 휩쓴 이른바 스페인 독감은 2천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H1N1이라는 유전자 번호가 부여된 이 바이러스가 왜 사라졌는지는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1957년에는 이른바 아시아형 독감(H2N2)이 유행해 200만명이 죽었고 1968년에는 홍콩독감(H3N2)으로 70만명이 죽었다. 이들 바이러스는 사라진 게 아니라 끊임없이 변이를 거듭하면서 공격할 대상과 기회를 노리고 있다.

물론 90년 전인 1918년보다 의학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러나 조류독감의 유일한 치료약인 타미플루는 로슈라는 회사가 독점 공급하고 있다. 문제는 이 회사가 10년 동안 공장을 쉬지 않고 돌려도 세계 인구의 20% 분량 밖에 만들지 못한다는 것. 물량 확보 경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일단 발병과 전염이 시작되면 상당수 사람들은 약도 써보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100만명 분량의 타미플루를 확보하고 있다. 만약 중국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했다면 우리나라의 타미플루를 보내줄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했다면 일본이나 바다 건너 미국이 우리에게 약을 보내줄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의학의 발달이 바이러스의 변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 더 정확하게는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

이유는 간단하다. 수천만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하는 일은 발기부전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만큼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과학잡지 네이처는 이렇게 비꼬기도 했다. “백신이나 항생제는 최악의 약품이다. 질병을 치료하니까 말이다.” 게다가 백신은 수요가 일정하지 않고 새로운 변종이 나타날 경우 이미 개발한 백신을 모두 폐기 처분해야 하는 위험도 뒤따른다. 뉴욕타임즈는 “백신과 약품 생산에 대한 공중의 필요와 사적이 통제 사이의 만성적인 부조화가 근본적인 이유”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악의 경우 타미플루가 막지 못하는 변종 조류독감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약회사들은 그때서야 새로운 백신 개발에 착수하겠지만 그때는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 국제적 연대를 위한 움직임도 있었지만 미국의 무관심으로 번번히 무산됐다. 위험은 충분히 드러나 있는데 아무런 대비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1세기 들어 이런 후진적인 질병이 유행하는 배경에는 공장형 축산과 도시 외곽 슬럼의 확산이라는 조건이 있다. 좁은 공간에 수많은 숙주를 밀집시킨 공장형 축산은 공격적인 변종 바이러스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또한 인구 밀도가 높은 이른바 메가 슬럼은 이 변종 바이러스가 유전적 장벽을 넘어 사람에게 전염될 가능성을 높인다. 또한 의학의 발달이 선진국에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12개 회사에서 생산되는 백신의 95% 이상이 선진국에서 소비된다. 정작 질병에 취약한 후진국은 거의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전염병의 발병 가능성 못지 않게 확산 속도가 과거보다 훨씬 빠르다는데 있다. WHO 전염병 분과장 아나르피 아사모아바는 말한다. “지구 공동체로서 우리는 여전히 준비가 안 돼 있다. 우리 가운데 하나라도 준비가 안 돼 있으면 아무도 준비가 안 돼 있는 것이다.”

조류독감은 사실 시장의 원리로 해결할 수 없는 지구 공동체와 인류 전체의 문제다.

조류독감 /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 정병선 옮김 / 돌베개 펴냄 /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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