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운용을 민간 전문가들이 맡게 됐다. 보건복지부는 11일 국민연금기금 운용체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민간 전문가 7인으로 구성하고 정책 집행은 새로 설립하는 기금운용공사에 맡긴다. 심의위원회는 가입자와 정부 공익위원으로 구성해 기금 운용계획을 심의·의결하도록 한다. 보험료와 연금액 등 전체 재정은 심의위가 맡고 기금의 운용은 운용위가 맡는 이중 구조다.

국민연금은 올해 4월 200조원을 넘어선데 이어 2010년이면 300조원, 2012년이면 400조원, 2043년이면 2600조원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2600조원이면 국민총생산(GDP)의 44%에 이르는 규모다. 기금의 고갈만큼이나 기금의 과잉 적립도 문제다. 2600조원을 모두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 어항 속의 고래처럼 비대해진 국민연금이 경제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운용을 잘 해서 수익률을 높이고 그만큼 국민들 부담을 줄여준다면 얼마든지 환영할 일이지만 그 부작용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고래가 어항에 뛰어들면 어항이 넘친다. 왜 고래가 빠져 나갈 때를 생각하지 못하는가. 수익률 못지않게 국민연금의 공공성과 기금의 안정성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12일 아침 신문에서는 그런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 국민들의 미래를 송두리째 자본시장에 쏟아 붓겠다는데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없다.

동아일보는 최근 잇따라 국민연금의 수익성을 강조하는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7일 사설에서는 “기금 운용의 효율성 제고와 지배구조 개선 차원에서 진작 이런 방향으로 갔어야 했다”며 개편안을 환영했다. 동아일보는 “올해 같은 주식 활황 장세에서도 기금 운용 담당자들은 경직된 기금운용계획에 묶여 구경꾼 노릇만 했다”면서 “우리도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이나 네덜란드 공무원연금처럼 수익성과 안정성이 좋은 세계적 수준의 연금을 가질 때가 됐다”고 한껏 기대를 드러냈다.

동아일보는 6일 B2면 머리기사에서도 “지난해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5.77%에 지나지 않는다”며 “민간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채권, 주식, 해외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 좀 더 공격적인 기관 투자자로 변신할 수 있을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경제는 12일 5면 머리기사에서 “현행 복지부가 좌지우지하는 기금 운용정책 수립과 의결, 집행, 결산 업무가 모두 민간에 이행되는 셈”이라며 “정부는 다만 복지부 장관이 기금 운용위에 가끔 참석해 정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통로는 만들어 놨다”고 설명했다.

한경은 도표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이나 캐나다 사회보장보험 등과 국민연금의 기금 관리체계를 비교했는데 외국에서도 기금 운용을 완전히 민간에 맡기는 사례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기금의 운용을 민간에 맡긴다는 것은 결국 투자신탁회사나 자산운용사가 국민연금의 운용을 결정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대부분 언론이 국민연금의 독립 운용을 환영하면서도 독립성이 형식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빼놓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정부는 완전히 손을 떼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매일경제는 사설에서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심의위를 통해 기금운용 방향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서울신문은 “연금 관련 정책 및 제도가 정부에 완전 종속된 상태에서 자산 운용 부분만 독립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울신문은 “공단도 기금 운용 방안을 수익률 극대화로 잡았다”며 “안정성 위주의 채권, 주식, 예금 투자에서 벗어나 고수익 고위험 상품 투자를 늘릴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겨레는 정부의 간섭을 우려하고 완전한 독립을 요구면서도 수익성 위주의 자산운용을 우려하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12면 <"수익성만 좇고 국민참여 감시기능 확보 못해">에서 김연명 중앙대 교수의 말을 인용, “연금기금이 수익성만 좇아 투자하다 보면 금융시장이 왜곡된다”며 “금융자산 전문가만으로 운용위를 구성하는 것은 수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또 기금운용위에 가입자 대표가 빠져 있다는데 문제제기를 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연금기금은 오롯이 가입자들의 보험료 수입으로 쌓인 돈”이라며 “이 돈의 사용처를 결정하는데 가입자 대표가 실질적 구실을 못한다는 건 의사결정의 민주성은 물론이고 자본주의의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수익률 중심의 운용 보다는 안정성과 공익성에 바탕을 둔 운용이 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내일신문 22면에 실린 NGO칼럼에서 김순희 한국노총 정책국장은 “향후 쌓이는 기금을 10~20년 사이에 현금으로 전환해서 연금을 지급할 때 발생할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과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언론이 간과하고 있지만 국민연금은 사들인 주식을 언젠가는 모두 내다 팔아야 한다. 국민연금이 끌어올린 주가는 결국 제자리를 찾게 될 거라는 이야기다. 주가가 출렁거리는 과정에서 수익은 국민연금이 아니라 일부 주식투자자들이 챙기게 될 가능성이 크다. 주식시장에서는 이미 국민연금이 손을 댄 종목마다 주가가 뛰어오르는 이상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국민연금이 주가를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는 상황이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을 독립하자는 논의는 그 선의와 무관하게 자본시장의 이해에 휘둘릴 위험이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민연금이 자본시장에 뛰어들고 자본시장이 확대되면서 나타나는 경제 구조의 변화다. 수익성과 기업의 장기 성장성은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국민연금이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지 않고 수익성만 좇을 경우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국민연금의 공공성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부분적립방식이다. 내 돈 내가 찾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젊은 세대들이 은퇴한 세대의 연금을 일부 부담하는 방식이다. 국민연금이 고갈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완전 부과식으로 바뀌게 된다. 올해 7월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그 시기는 2060년으로 늦춰졌다. 젊은 세대들이 낸 보험료가 바로 은퇴한 세대의 연금으로 빠져 나가게 된다는 이야기다.

국민연금의 미래를 고민할 때 핵심은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높이고 고갈 시기를 늦추는 것 못지않게 미래의 젊은 세대들이 부과식 국민연금을 감당할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결국 국민연금의 고갈은 필연적이고 고갈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국민연금의 공공적 활용이 필요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자본시장에 국민들의 미래를 쏟아 붓고 수익률을 높이는데 고심할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출산율을 높이는 방안이 고민돼야 한다. 2600조원이면 전혀 다른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돈이다.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으로 국민들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애 낳기 좋은 사회가 되고 출산율이 올라가고 보험료 수입이 늘어나면 고갈 시기도 늦출 수 있고 다음 세대들의 부담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자본시장에서 국민들 미래를 걸고 수익률 1%에 목을 매는 것보다 훨씬 현명한 일이될 것이다.

이정환 기자 top@journalismclass.mycafe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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