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4월10일과 5월27일 두 차례에 걸쳐 이종걸 민주당 의원과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MBC와 KBS, 그리고 이들 방송사의 소속기자 5명, 박상주 미디어오늘 논설위원, 민주언론시민연합 박석운 공동대표 등을 상대로 모두 68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조선일보의 방상훈 사장이 고 장자연씨에게 성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거나 보도해서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소송의 이유였다.
장씨가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날은 3월 7일. 무명 연예인의 단순 자살로 알려졌던 장씨의 죽음은 그가 숨지기 직전 작성한 자필 문건이 공개되면서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이 문건에는 기획사로부터 술 접대와 성 상납을 강요받아 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유력 인사들의 실명이 거론돼 있어서 이를 보도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언론사마다 논란이 분분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를 실제로 봤다는 기자는 거의 없었고 떠도는 소문은 사실 확인이 불가능했다. 처음 보도한 KBS의 문건 입수 경위도 석연치 않았다. KBS는 이 문건을 장씨의 전 매니저 유아무개씨의 기획사 사무실 앞 복도에 놓인 쓰레기 봉투에서 입수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유족들은 문건을 읽고 소각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KBS는 “누군가 불에 태우려 했지만 다 타지 않았다”고 밝혔다.
소송 당하는 게 두려워서 못 썼을까.
내가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과연 언론이 이 사건을 어디까지 보도할 수 있느냐다. 더 구체적으로는 논란이 된 조선일보 방 사장의 실명을 밝히지 않았던 (또는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다. 이는 내가 속한 미디어오늘의 입장과는 무관하고 다만 이 사건과 관련한 여러 논점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핵심은 확인하지 못한 사실에 대해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 언론이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조선일보의 방 사장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4월6일 이종걸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이 임원의 실명을 거론하고 진실규명을 촉구하면서부터다. 이날 인터넷 신문인 민중의소리와 오마이뉴스, 프레시안은 이 의원의 발언을 인용해 조선일보 임원의 실명을 보도했지만 다른 신문들은 모두 이를 “○○일보 ○사장”이라는 식으로 익명처리 했다.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데 대부분 언론이 침묵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조선일보는 이날 해명자료를 내고 “본사 최고 경영자는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면서 “면책 특권을 가진 국회의원이라 하더라도 대정부 질문에서 전혀 근거 없는 내용을 ‘아니면 말고’식으로 물어 특정인의 명예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것은 면책특권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이 해명자료에 대해서도 “해당 언론사”라고 익명 처리했다.
조선일보는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을 보도하거나 실명을 적시, 혹은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을 보도하는 것은 중대한 명예훼손 행위에 해당되므로 관련 법규에 따라 보도에 신중을 기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많은 언론사들이 조선일보의 경고 또는 협박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조선일보는 대대적인 소송을 벌였고 재판을 지켜봐야겠지만 장자연 리스트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이상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이 무렵 언론 보도를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이종걸 의원이 ○○일보 ○ 사장이 장자연 리스트에 있다고 폭로했다. 그런데 ○○일보는 보도자료를 보내서 근거 없는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조선일보가 이 의원 등을 고소했을 때도 언론사들은 “○○일보가 이 의원 등을 고소했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그때서야 조선일보라는 실명을 밝혔지만 다른 신문들은 여전히 “○○일보”라는 표현을 고집했다.
4월13일에는 강희락 경찰청장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에서 “조선일보의 고위 간부가 리스트에 있다”고 공식 확인을 해주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조선일보라는 이름을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리고 말았다. 이미 수사 대상에 올라 있음을 경찰이 공개적으로 확인까지 해준 상황인데 “경찰청장이 ○○일보의 고위 간부가 리스트에 있다고 밝혔다”고 쓸 수는 없는 일이니까. 언론은 그때부터 조선일보라는 이름을 조심스럽게나마 쓸 수 있게 됐다.
“○○일보는 결백하다”고 주장했다? ○○일보가 어딘데?
많은 독자들이 도대체 뭐가 무서워서 실명을 밝히지 못했느냐고 항의를 했다. 특히 이 의원 등이 방 사장의 실명을 밝혔는데도 이를 익명 처리한 것은 비겁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 의원이 이렇게 말했다”고 쓰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였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이 의원의 발언은 분명히 면책특권 남용으로 볼 소지가 있었고 기자가 스스로 확신할 수 없는 내용을 3자의 발언에 기대어 묻어가는 것이 오히려 더 비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의원의 발언을 못 썼더라도 조선일보가 이를 반박하는 해명자료까지 냈는데 그건 왜 못 썼느냐는 비난도 있었다. 해명자료를 낸 건 조선일보에서도 문제를 공식화한 것이니 “조선일보가 뭐라고 말했다”고 쓰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그런데 역시 대답은 마찬가지다. 당사자가 부인하고 있는데 이를 내세워서 당사자의 신원을 공개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 조선일보가 해명자료를 낸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기사로 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핵심은 방 사장이 장씨에게 성 상납을 받았느냐는 것인데 이 의원은 문제의 리스트를 직접 봤는지 밝히지 않았다. 이 의원 역시 떠도는 소문을 거론한 것일 뿐이라면 이를 인용하는 것은 결국 확인되지 않은 범죄 혐의를 공개하는 일이 된다. 나중에 경찰이 조선일보의 임원이 리스트에 오른 사실을 공식 인정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지만 그 당시에는 이 의원의 발언을 인용하기에 사실 확인이 너무 부족했다.
솔직히 말해보자. 조선일보의 협박이 두려웠던 것 아닌가. 그것도 배제할 수는 없다. 국회에서 한 발언이기 때문에 이 의원은 면책 특권을 받을 수 있겠지만 며칠 뒤 MBC 백분토론에 출연해 왜 이를 보도하지 못하느냐고 주장한 이정희 의원의 경우는 또 다르다. 이 의원의 발언을 보도한 언론사들 역시 힘겨운 소송을 치러야 한다. 아무리 국회의원의 발언을 인용했더라도 사실과 다르다면, 또 사실일 경우라도 얼마든지 명예훼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협박보다 더 중요한 판단 근거는 사실 확인 여부였다. 소송의 부담이나 동업자 윤리 때문에 보도하지 않은 언론도 있었겠지만 이 의원의 폭로로 추가로 더 드러나거나 확인된 사실이 없다는 게 실명을 밝힐 수 없었던 핵심 이유였다. 모든 국민들이 이미 다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언론이 공식화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설령 그가 온갖 비판의 중심에 서 있는 조선일보의 사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동안의 언론의 검찰이나 경찰 관련 보도 관행에 비춰보면 만약 방 사장이 공식적으로 이 사건과 관련해 경찰에 출두했거나 출국금지된 사실이 확인됐을 경우는 얼마든지 기사를 쓸 수 있고 쓰는 게 맞다. 방 사장 정도면 공인이라고 볼 수 있고 그가 경찰의 수사 대상이 됐다는 건 이 사건에 쏠린 국민들의 알 권리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치인 사건에서 언론은 그렇게 써 왔다.
지난해 10월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은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을 제기했다. “김 전 대통령의 수억 달러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다는 의혹이 있는데 이를 확인했느냐”는 질문이었다. 주 의원의 발언 역시 면책특권 남용으로 볼 소지가 충분했지만 조선일보는 이 발언을 적나라하게 보도했다. 그랬던 조선일보가 이제 와서 장자연 리스트를 폭로한 이 의원의 발언을 비난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선일보의 이중잣대는 비판 받을 만하지만 과거에 그랬으니 지금도 그래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주 의원의 발언이 문제인 것처럼 이 의원의 발언도 문제라고 보는 게 맞다. 다른 언론들이 조선일보의 방식으로 이를 되갚아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은 인정돼야 하지만 이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두 번 말할 이유가 없다. 국회의원이 면책된다고 해서 이를 인용한 언론도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왜 조선일보에 대해서만 느슨한 잣대를 들이대느냐는 비난도 많았다. 언론이 언제부터 피의사실 공표를 그렇게 신경 썼느냐는 이야기다. 연쇄 살인범 강아무개씨나 미네르바 박아무개씨의 경우 경찰 수사 과정에서 신상과 얼굴 공개는 물론이고 가족과 사생활까지 집요하게 들쑤셨던 것과 비교하면 언론의 이중잣대 논란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잘못된 잣대는 후자가 아니라 전자라고 생각한다.
이중잣대… 어느 잣대가 잘못 됐을까.
최종적으로 법원에서 실형을 받기까지 아무리 연쇄 살인범이라고 해도 그의 인권은 보호돼야 한다. 미네르바 사건의 경우도 아무리 대중의 관심이 쏠린 사안이라고 하더라도 굳이 박씨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할 필요는 없었다. 그건 그가 무죄 판결을 받고 난 뒤에도 마찬가지다. 강씨나 박씨의 인권이 보호돼야 하는 것처럼 방 사장의 인권도 보호돼야 한다고 하면 받아들이기 거북한가.
물론 방 사장은 공인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건 주 의원이 폭로한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이나 최근 검찰 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포괄적 뇌물 수수 의혹도 마찬가지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언론은 아무것도 보도할 수 없다. 다만 이들이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 있는 공인이기 때문에 언론이 이를 보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건 언론의 책임이고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인의 경우에도 지켜져야 할 원칙은 있다. 노 전 대통령을 수사하던 검찰은 확인되지 않은 피의 사실을 비공개적으로 일부 언론에 흘렸고 이들은 이를 받아써가면서 크고 작은 특종을 챙겨왔다. 법원에서 재판을 받기 전에 노 전 대통령은 이미 여론의 재판을 받고 죽음에 이를만큼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의 유죄 여부와 무관하게 이는 죄형 법정주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아무리 그가 공인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언론은 100% 확인된 것만 보도해야 하나?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아무런 의혹도 제기할 수 없나? 물론 그건 아니다. 필요하다면 소송을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만 보도해야 할 수도 있고 개연성이 충분하다면 확인되지 않은 의혹도 근거를 들어 공개할 수 있다. 경찰이나 검찰의 공식 발표를 기다리기 전에 그 이면과 배후를 파고들어야 할 때도 있다.
장자연 리스트의 경우는 경찰이 서둘러 수사를 덮은 의혹이 짙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론이 확인되지 않은 혐의를 뒤집어씌울 수는 없는 일이다. 집요하게 파고들지 않은 언론의 게으름을 비난할 수는 있지만 언론이 방 사장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변명을 하자면 리스트 말고는 아무런 다른 증거가 없었고 취재 역시 철저히 차단돼 있었다. 그렇다고 없는 내용을 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방 사장의 이름을 쓰지 않은 언론들, 특히 진보 성향의 언론들은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최상재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민중의소리 기고에서 “간디의 말에 힘이 실리기 위해 무수히 많은 인도의 민중들이 저항하며 피 흘린 것을 기억하라”면서 “‘해당 언론사’라고만 써도 세상 사람들이 알아듣는 것은 온갖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 민중의소리, 오마이뉴스, 프레시안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쏘아붙였다.
나는 민중의소리와 오마이뉴스, 프레시안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 조선일보의 과도한 권력과 여론 왜곡을 비판하는 것과 조선일보 사장을 공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결과적으로 방 사장이 리스트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긴 했지만 이를 확인하기도 전에 이 의원의 발언을 빌어 의혹을 제기한 것은 적절치 못했다. 조선일보가 아니라 다른 어느 신문사 사장이었어도 이들 언론들이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
조선일보였기 때문에 일부 언론은 더 꼬리를 낮췄고 조선일보였기 때문에 일부 언론은 더욱 공격적으로 덤벼들었다. 양쪽 다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확실한 것은 결국 쓸 수 없는 것은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방어하고 소송을 걸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하지만 그 사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막연한 개연성 만으로 의혹을 제기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공익 위한 진실 공개, 위험 감수하고 의혹 제기해야.”
그러나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다른 의견을 낸다. 박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비리 의혹 보도와 관련, “편파적이거나 추측성일지라도 일부 부정확한 점이 있더라도 보도는 이루어지는 것이 마땅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민주노동당 의원 시절 떡값 검사들 실명을 공개한 것을 사례로 들면서 “이는 진실에 대한 실체적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진실규명을 해달라는 사회에 대한 요청이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오로지 공익을 위한 진실 공개는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더라도 면책된다”는 입장이다. 장자연 리스트의 경우 “실제 성상납을 받았는지 여부는 사실관계의 확인이 어렵겠지만 그러한 문건이 있다는 보도는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며 이 진실을 보도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합법적”이라는 이야기다. 박 교수는 “설령 명예훼손 소송의 비용이 들더라도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언론의 의무”라고까지 주장한다.
나는 박 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노회찬 대표가 떡값 검사들 실명을 공개한 것과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사안의 혐의 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노 대표는 X파일의 녹취록을 직접 봤지만 이종걸 의원은 장자연 리스트를 직접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이 의원의 주장을 받아쓰는 건 오히려 쉬운 결정이었다. 오히려 비겁하다는 비난을 들으면서 경과를 지켜보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
주목할 부분은 방 사장의 이름을 공개하느냐 마느냐로 논란을 벌였던 언론들이 정작 경찰이 리스트를 공식 확인시켜준 뒤로 일제히 입을 닫았다는 사실이다. 방 사장이 리스트에 있다면 왜 그를 불러다 수사하지 않는지 왜 리스트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지 등 당연히 해야 할 질문들을 대부분 언론이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4월6일 이종걸 의원 폭로 때는 못 썼더라도 13일 강희락 청장이 이를 시인한 뒤부터는 썼어야 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장자연 사건은 영원히 미궁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우여곡절 끝에 방 사장이 리스트에 있다는 사실은 확인됐지만 단순히 강요된 술자리 정도였는지 성 상납까지 갔는지 아니면 전혀 사실무근인지 등 리스트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무 것도 밝혀진 바가 없다. 언론이 방 사장의 이름을 공개하고 그에게 망신을 주는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 관련 언론 보도 역시 마찬가지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언론의 참회가 쏟아지고 있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피의사실 공표 자체를 지나치게 제한할 필요는 없다. 다만 공인의 경우라도 무분별한 추측 보도보다는 충분한 개연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국민의 알 권리와 피의자의 인권 가운데 어디에 비중을 둘 것이냐는 사안마다 다르겠지만 그 기본적인 원칙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리를 하자면 연쇄살인범과 미네르바는 개인이기 때문에 그 범죄의 경중과 무관하게 인권이 보호돼야 한다. 방 사장과 노 전 대통령은 공인이기 때문에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피의사실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다만 여기저기서 흘러나온 정보들을 어디까지 보도할 것이냐를 두고 좀 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방 사장 보도는 그가 리스트에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직후부터 시작됐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장자연 리스트와 ○○일보 사건이 주는 교훈은 결백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피의자에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경찰이 혐의를 입증해 내지 못한다면 그를 처벌할 방법이 없다. 조선일보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조선일보를 누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워낙 성격이 다른 사안이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경우도 같은 교훈을 준다. 언론은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지만 이를 근거로 섣불리 누군가를 단죄하려고 들어서는 안 된다.
(월간 인물과사상 7월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