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2일 산업은행 민영화 및 한국개발펀드 설립방안을 발표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대우증권, 산은자산운용, 산은캐피탈 등 자회사들을 지주회사로 전환시켜 3단계에 걸쳐 민영화 과정을 거쳐 투자은행으로 육성하고, 한국개발펀드를 분리해 산은지주회사 지분 현물출자 후 지분 매각을 재원으로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좀 더 쉽게 정리하면 지금은 정부가 산업은행의 100% 대주주고 산업은행이 대우증권과 산은자산운용, 산은캐피털 등을 지배하는 구조지만 민영화 이후에는 이 모든 자회사들을 민간 소유로 넘기고 민영화 과정에서 분리된 한국개발펀드만 정부소유로 남게 된다. 투자은행과 정책금융기관을 분리한다는 게 핵심이다.
문제는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해양과 하이닉스반도체, 한국전력공사, 자산관리공사 등 알짜배기 보유자산이 이 과정에서 매각이 불가피하다는데 있다. 정부는 이들 보유자산을 매각해 한국개발펀드의 설립 재원을 확보한다는 계획이지만 이 경우 산은지주회사의 외형이나 지분법 평가이익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산업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국내 인수주체가 마땅치 않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산은지주회사의 매각가격은 20조에서 많게는 4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대형 투자은행을 육성한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자칫 외국계 자본에 토종 금융기관을 넘겨주는 과거 외환은행 매각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 경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못지 않게 광범위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도 있다.
또한 한국개발펀드의 역할에 대해서도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정부는 독일의 국영산업은행을 벤치마크 모델로 삼아 민간 금융기관을 통해 중소기업에 유동성을 공급하되 정부는 자금집행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시장에 맡겨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지만 이 경우 자칫 우량 기업에만 자금이 집중되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정부는 향후 기업은행이나 우리금융지주를 포괄하는 메가뱅크의 설립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무조건 덩치만 키운다고 해서 세계적인 투자은행이 되는 것이 아닐뿐더러 인수합병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조급함을 드러내고 있지만 단기간에 추진이 쉽지 않을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언론은 산업은행 민영화의 일부 부작용을 우려하면서도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 초대형 투자은행의 새 주인이 국내 재벌이나 외국계 자본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또한 막무가내식 민영화 과정에서 금융 공공성이 훼손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찾아보기 어렵다.
매일경제는 3일 사설에서 “아예 민영화 자금으로 국가 채무를 상환하거나 싱가포르의 테마섹 같은 국부펀드를 만들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국경제는 아예 “더욱 시급한 일은 산업자본도 인수경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금산분리를 더욱 과감하고 신속하게 진행하는 일”이라며 노골적으로 재벌 편을 들고 나섰다.
금융산업노조는 2일 기자회견을 열고 “무분별한 민영화와 시장개방이 아닌 소유구조를 강화 한 뒤 해외진출을 통한 금융시장 개척, 경쟁력 강화의 수순으로 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오히려 기존 금융공기업들의 정책금융 수행기능을 더욱 강화하여 시장실패에 대비한 안전판을 한층 보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