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순채무국이 될 위기에 놓여있다고 29일 아침 주요 신문들이 비중있게 보도하고 있다. 2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대외채권은 4224억8천만달러로 지난 3월말보다 44억8천만달러나 줄어든 반면 대외채무는 4197억6천만달러로 59억6천만달러 늘어났다. 채권은 줄어들고 채무가 늘어나면서 대외채권에서 대외채무를 뺀 순대외채권 규모는 27억1천만달러로, 3월 말 131억6천만달러의 5분의 1 정도로 줄어들었다.


참고 : 9월 위기설? 언론의 과장보도 지나치다. (이정환닷컴) (이른바 9월 위기설이 지난달부터 계속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이달 초에 쓴 기사.)

조선일보는 B3면 “9월 위기설 왜 확산되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은행 예금을 모두 인출한 김아무개씨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9월에 만기를 맞는 외국인 채권 투자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환율과 금리가 급등하고 금융회사들과 대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질 거라는 이른바 9월 위기설 때문이다. 김씨는 “그렇잖아도 경제가 불안한데 이런 위기설까지 나도는 것을 보니 다시 IMF가 오는 것 아니냐”고 묻고 있다.

조선일보는 3면 “외환시장 안정용 200억달러밖에 안 돼 불안”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도 “총 외채 가운데 유동외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말 75.8%에서 6월 말 86.1%로 늘었다”면서 “정부가 외환안정을 위해 쓸 수 있는 자금이 현재 200억달러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이 신문은 “앞으로 경제난이 가중될 경우 외국인의 자본탈출이 일어날 수 있고 국내 자본들도 국내보다는 해외투자를 늘릴 수 있다”면서 “이 때문에 갑자기 달러 수요가 몰릴 경우 외환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업계 관계자의 말을 전하고 있다.

이 정도로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신문이 순채무국 전환을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진단하고 있다.

한겨레는 5면 “환란 이후 또 순채무국 전락 위기…외화관리 빨간 불”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아직 252억달러의 여유가 있지만 유동외채가 외환보유액을 넘어서는 순간 외환당국은 환율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겨레는 또 “외국인이 주식매각 대금을 달러로 바꿔나가게 되면 그 순간 대외채무가 늘어나게 된다”면서 “갑자기 대외 채무가 급증할 수 있는 요인이 상존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경제는 사설에서 “국제수지 적자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환투기세력이 외환시장을 공격할 경우 환율급등과 주가급락의 악순환이 발생할 수도 있다”면서 “이 경우 외환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심각한 경제혼란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물론 위기의 징후를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만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두려움을 확산시키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갑자기 주식을 팔고 나간다는 가정은 그야말로 가정일 뿐이다. 어느 나라든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심각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우증권 고유선 연구원은 “최근 스왑베이시스가 확대되면서 외국인들의 단기 투자 비중이 높아졌는데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서 스왑베이시스도 확대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고 연구원은 “이는 9월 채권 만기를 전후해서 외국인들의 재정거래 유인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금이 일시에 이탈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유동외채를 외환보유액으로 갚는다는 발상도 문제가 많다. 유동외채는 정부가 아니라 대부분 금융회사들이나 기업들의 빚이다. 만기를 연장하거나 시중에 유통되는 달러화로 결제하면 되는 것이고 외환보유액과는 무관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달러화 수요가 부족하게 될 가능성도 있지만 한국은행에 따르면 유동외채의 상당부분이 외국계 은행들이 해외본점에서 들여온 것으로 실제 달러화 수요와는 무관하다. 또 조선회사 등 수출업체들이 환율 방어 차원에서 선물환을 매도한 것도 유동외채에 포함돼 있는데 역시 장부상 채무일 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말 현재 우리나라의 순대외채권은 27억1천만달러지만 대부투자 70억달러, 선박수출선수금 500억달러, 환헤지용 해외차입 930억달러 등 총 1500억달러는 상환부담이 없는 채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런 계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실질 순대외채권은 1527억달러가 된다. 이 정도면 당장 지급불능 사태에 이를 위험은 거의 없다는 게 한국은행의 입장이다.

1997년 금융위기의 근본원인은 기업부문의 과잉투자가 불러온 과잉채무와 경상수지 적자, 외채 증가의 주 원인이었다. 애초에 상황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기업들은 오히려 투자를 안 하고 있고 부채비율도 그때와 비교하면 3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다. 경상수지 적자와 내수와 소비 부진이 우려되기는 하지만 금융위기에 이를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은행들 과도한 대출 확대 역시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는 있지만 내수 위축의 문제일 뿐 금융위기와는 무관하다.

삼성증권 신동석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최근 논란과 관련, “기업부문의 대차대조표가 건전하고 투자과잉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 않다는 점, 경상수지 적자의 원인이 상품가격 폭등, 해외서비스 소비 증가인 점, 그리고 외채 급증의 원인이 선박수주, 해외증권투자 증가, 외국인 채권투자 급증 때문이라는 점에 비추어보면 1997년 위기 직전과는 다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신 연구원은 다만 △금리상승으로 인한 가계의 이자지급 부담비율 증가, △금융기관의 대출 축소로 인한 일부 내수부문의 신용경색 가능성, 그리고 △일부 비은행 금융기관의 부실화 가능성 등을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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