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8일 38면에 실린 “9월 위기설이 언론 탓?”이라는 제목의 칼럼은 여러 가지로 흥미롭다. 이 칼럼은 언론이 선정적인 이슈를 만들어 내고 그 이슈에 편승해 기사를 쏟아내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일련의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주목할만한 사례다.
김정호 경제부장은 이 칼럼에서 “정부가 위기설 유포의 주범으로 언론을 들먹이고 있다”면서 “그렇다면 한국경제신문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지난 7월 말 9월 위기설을 가장 먼저 보도해 시장을 헷갈리게 만든 것이 바로 한경”이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다고 김 부장이 위기설의 책임을 통감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김 부장은 이어 “한경은 정부의 잣대로 보면 매우 불량한 신문”이라면서 “지난 5월에는 급증하는 단기외채를 문제 삼은 ‘한국 내달엔 순채무국’이라는 기사로 ‘공연한 걱정거리’를 만들었는가 하면 7, 8월에는 나라 경제의 펀더멘털과 기업의 해외차입 여건이 악화된다는 ‘혹세무민성 기사’를 거의 매일 쏟아내지 않았던가”라고 반문한다.
김 부장은 비꼬는 투로 이야기했지만 우리나라가 순채무국으로 돌아선다는 기사나 나라 경제의 펀더멘털과 기업의 해외차입 여건이 악화된다는 기사는 팩트에 충실한 기사고 시의적절했다. 다만 이를 엮어서 9월에 위기가 온다고 전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언론이 퍼뜨린 9월 위기설의 핵심은 9월에 채권 만기가 몰려 있어 갑자기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경우 금융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심지어 제2의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거론하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로 외국인 자금이 갑자기 빠져나갈 가능성은 거의 없고 외환보유액도 충분하다는 것이 시장의 전반적인 전망이었다. 애초에 상식적인 문제였다.
경제가 어려운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위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위기의 징후를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를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시장에 근거 없는 두려움을 퍼뜨리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간다는 가정은 그야말로 가정일 뿐이다. 어느 나라든 외국인 투자자가 갑자기 빠져나가서 버틸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9월 위기설은 언론의 선정주의가 빚어낸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김 부장은 “위기의 조짐이 없다면 아무리 위기설을 유포해도 콧방귀조차 뀌지 않는 곳이 시장”이라면서 자신들이 만들어낸 위기설을 두둔한다. “설(說)만으로는 근본적인 흐름을 바꿀 수 없는 곳이 바로 시장”이라는 이야기다.
김 부장의 논리를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시장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시장이 위기설에 흔들리는 것은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위기설은 그래서 옳다.’
김 부장은 위기설의 책임이 언론이 아니라 정부에 있다고 주장을 이어가는데, 더 흥미로운 대목은 다음 문장이다.
“하긴 몇몇 못된 매체의 충동질로 ‘촛불정국’이라는 심각한 혼란을 겪은 직후이다 보니 언론 탓이 먹힐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장은 길거리 군중과 다르다.”
이 칼럼의 전체 흐름을 볼 때 “몇몇 못된 매체”라는 표현은 자신들을 “불량한 매체”라고 표현한 것처럼 “정부의 잣대로 보면” 그럴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지는 “시장은 길거리 군중과 다르다”는 문장은 이 신문이 촛불정국과 9월 위기설을 이해하는 핵심 논리다.
이 신문은 촛불정국을 불러온 것이 몇몇 못된 매체의 충동질 때문이라는 정부의 관점을 굳이 부정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다만 길거리 군중은 일부 언론의 충동질 때문에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자신들이 경고했던 최근 시장의 혼란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는 논리를 편다.
과연 시장은 길거리 군중과 다를까. 시장은 언론의 충동질 따위에 흔들리지 않고 늘 합리적이고 늘 효율적으로 움직일까. 9월 위기설과 관련, 최근 투자자들의 움직임은 과연 언론의 과장 보도와 무관한 것일까.
이 칼럼은 이 신문의 과장 보도에 대한 교묘한 변명이다. 위기설이 지나친 과장이거나 사실 무근으로 드러나려는 참인데 이 신문은 최근 시장의 혼란이 위기설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위기가 임박했기 때문이라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이 신문은 이런 억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위기의 원인이 정부의 소통 부재에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에 ‘말도 안 된다’며 투정만 부렸지 시장과 대화하려는 노력은 없었다”며 “정부와 금융당국이 소통마저 끊었는데 위기설이 해소될 리 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위기설 때문에 위기가 온 건 아니라고 변명하면서도 정부가 위기설과 관련, 소통을 제대로 하지 않아 위기를 키웠다는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신문의 주장대로라면 언론이 근거없는 위기설을 퍼뜨리거나 말거나 정부가 이 위기설을 제대로 해명하거나 말거나 시장은 합리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시장은 길거리 군중과 다르기 때문이다.
9월 위기설이 사실무근으로 드러난다면 이 위기설이 과장됐음을 인정하거나 이를 받아들이는 시장의 반응이 지나쳤음을 지적하고 경고해야 한다. 그런데 이 신문은 여전히 시장은 옳다고 항변한다. 그래야 위기설이 옳고 이를 일찌감치 예견한 언론의 호들갑도 옳기 때문이다. 이른바 자기예언적 전망이 결과적으로 실패로 드러난 셈이지만 이 신문의 뒷수습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이 신문의 논리를 원용하자면 시장이 설만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길거리의 군중도 몇몇 못 된 매체들의 충동질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게 위기설에도 시장이 공황상태로 치닫지 않는 이유고 길거리 군중이 결국 촛불을 거두고 광장을 떠난 이유이기도 하다. 광우병 위험을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린 MBC
이건 촛불집회가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고 위기의 실체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한경이 이제 와서 시장의 혼란이 위기설을 거론한 언론의 책임은 아니라고 발뺌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시장이나 길거리의 군중이나 합리적으로 움직이지만 비이성적인 움직임을 보일 때도 물론 있다. 이 칼럼의 자가당착적 논리는 시장은 합리적이고 길거리의 군중은 비이성적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번 강달러의 원인이 미국내 신용위기 때문인데 언론은 단순히 국내 외환 수급상황의 문제로 해석했기 때문에 빚어진 혼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페니메이와 프레디맥 공적자금투입으로 어느정도 진정되는것만 봐도 알수 있지 않스니까. 시장을 움직인것은 해외에서 들어온 투자자금의 흐름이었던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