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블로거가 “대통령 이명박 괜찮을까”라는 제목으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과거 발언을 모은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기본적으로 낙태에 반대하지만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 태어난다든지 할 경우 용납될 수 있다”라거나 “부안에서는 원자력 쓰레기 조금 묻는 걸 두고 2만명이 난리를 치더라” 같은 이 후보의 위험한 발언들만 모았다.

김연수라고 실명을 밝힌 이 블로거는 “선거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언론에 보도된 이 후보의 발언을 그대로 담았다”고 밝혔다. 몇 가지만 더 살펴보자. “돈 없는 사람들이 정치하던 시대는 지났다”, “부실 교육의 핵심은 교육을 책임진 사람들이 모두 시골 출신이라는 데 있다”, “이번 선거는 친북 좌파와 보수 우파의 대결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등등.


이 글은 블로그 커뮤니티 사이트 올블로그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조회수가 5천을 넘어섰고 다른 블로그와 게시판으로 옮겨가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며칠 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삭제 요청을 해 왔고 김씨는 글을 삭제했다. 김씨는 다른 블로그와 인터뷰 형식으로 이와 관련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명박의 마사지 걸 발언, 언론은 왜 침묵하나.

“이명박 후보가 마사지 걸 발언을 했을 때였다. 이 자리에 10개 일간지 편집국장이 동석했다는데 한겨레와 오마이뉴스를 빼고는 모두 침묵했다. 이런 일이 묻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이왕 하는 김에 이 후보의 과거 발언들을 모아서 정리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방할 목적이 아니라 알 권리를 위한 행동이었다.”

김씨는 무엇이 선거법 위반이 되는지 선관위에 여러 차례 질의를 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김씨가 올린 글은 삭제된 상태지만 이미 블로그와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곳곳에 옮겨져 있다. 검색엔진에 제목만 집어 넣으면 얼마든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통령 이명박 괜찮을까”는 지금 5탄까지 나와 있다.

1탄이 단순히 이 후보의 발언을 모아놓은 것이라면 2탄은 이 후보의 말 바꾸기와 정책 혼선에 초점을 맞췄다. 3탄과 4탄은 BBK 사건과 서울시장 재직시절 비리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이 모든 발언과 의혹이 이미 언론에 부분적으로 공개된 내용이라는 사실이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출처도 분명히 밝혔다.

김씨의 글이 의미를 갖는 것은 많은 유권자들이 궁금해 하지만 언론에 소개하지 않거나 묻어두는 사실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상황에서 김씨처럼 과거의 사실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전후 맥락과 본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주목할 부분은 많은 네티즌들은 김씨의 글을 읽고 나서야 BBK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됐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언론은 이 후보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될 이 사건을 비중있게 보도하지 않았고 포털 사이트는 관련 기사를 노출시키지 않았다. 네티즌들이 김씨의 글에 열띤 반응을 보인 것은 김씨가 주류 언론이 말하지 않은 중요한 사실들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명박 후보 뿐만 아니라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나 이인제 민주당 후보,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등도 털어서 먼지가 나지 말란 법 없다. 핵심은 이 후보 뿐만 아니라 모든 후보들이 유권자들의 심판을 거쳐야 한다는 데 있다. 설령 이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의 비판이라도 이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관위는 김씨의 글이 공직선거법 93조 탈법 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 금지와 255조 부정 선거운동의 규정에 위반된다는 입장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김씨의 글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특정 후보자를 반대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사실을 적시했다고 하더라도 후보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경우는 위법이라는 이야기다.

선관위에 따르면 게시판 관리자가 삭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82조와 256조에 의거, 처벌될 수 있다. 선관위는 심지어 문제가 되는 글의 링크를 게재하는 것만으로도 선거법 위반이 된다는 입장이다. 일부 포털 사이트에서는 관련 게시물을 비공개 처리하거나 임의로 삭제해 논란을 더욱 확산시키기도 했다.

“사실 적시해도 부정적 영향 미치면 위법.”

네티즌들은 삭제된 파일을 압축파일로 만들어 메일로 주고받거나 해외 블로그 사이트에 올리면서 선관위의 감시를 피해 나갔다. 포털 사이트에서는 관리자가 임의로 게시물을 삭제할 수도 있지만 개인 블로그나 해외 사이트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게시물이 이미 광범위하게 확산된 데다 해외 사이트를 추적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김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삭제했지만 김씨의 글은 이미 수백 수천개의 사이트에 옮겨져 있다. 선관위는 김씨를 처벌할 수 있을까. 김씨의 글을 옮겨간 수백 수천개 사이트의 관리자들을 모두 처벌하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아니면 일부 사이트 관리자들을 처벌하고 경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선거 18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 또는 추천, 반대하는 내용의 벽보나 문서, 인쇄물은 물론이고 인터넷 게시물이나 휴대 전화 문자 메시지도 모두 금지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는 2년 이하의 징역, 4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국회에서는 인터넷 선거운동을 상시 허용하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이 계류중이지만 선거를 앞두고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선관위는 일단 개정안이 최종 통과되고 시행되기까지는 현행 선거법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와중에 한나라당은 오히려 인터넷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한나라당이 발의한 선거법 개정안은 포털 사이트 등에 정보의 삭제권을 부여해 선거에 부당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법원의 판단이 있기 전에도 자의적으로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또한 온라인 업체에 네티즌의 개인 정보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문화연대와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6개 시민사회단체는 9월4일, 선거법 93조 등에 대해 헌법 소원을 청구한 상태다. 이번 소송에는 인터넷을 통해 공개 모집한 네티즌 192명이 함께 참여했다. 이들 단체들은 선거법이 헌법 2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의도 여하에 따라 선거법 위반 여부를 적용하겠다는 것은 의사표현에 앞서 유권자가 자기검열을 하고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억제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순한 의견 개진은 허용하되 선거에 영향을 미칠 의도가 있는 행위를 골라 처벌하겠다는 조항 역시 기준이 모호해 문제가 된다”고 지적한다.

네이버의 기계적인 중립과 논쟁 차단.

한편 포털 사이트 네이버가 후보자별 기사를 노출하지 않는 대신 정당별 기사 모음을 제시하고 정치 기사에 댓글을 일원화하는 등 기계적 중립을 표방하고 나서 네티즌들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네이버는 특정 정치집단에 유·불리할 수 있는 편집을 배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설명했지만 네티즌들은 이명박 후보에 편파적인 편집이라고 발발하고 있다.

대선미디어연대는 네이버가 이 후보에게 우호적인 기사를 주로 노출하는 반면 비판적인 기사에 소극적이라는 모니터 결과를 발표해 논란을 더욱 확산시켰다. 대선미디어연대에 따르면 네이버에 실린 이 후보 관련기사 63건 가운데 40.0%가 이 후보에 긍정적인 기사였고 부정적인 기사는 12.7%에 그쳤다.

그러나 대선미디어연대의 모니터는 하루 두 차례, 일주일 동안의 결과로 공신력 떨어진다는 비판에 부딪혔다. 모니터 기간이 짧은 데다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뉴스 편집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 포털 사이트의 뉴스 편집에 대한 좀 더 체계적인 감시와 비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네이버는 특정 후보에 대한 기사 비중이 높은 건 애초에 기사를 공급하고 있는 언론사의 기사 비중이 치우친 탓이라고 변명을 늘어 놓았다. 이명박 후보에 대한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으니 포털 사이트에서도 이 후보의 기사가 많이 노출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네이버는 이 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노출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물론 네이버가 의도적으로 이 후보에게 우호적인 편집을 하고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만 기계적인 중립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이 후보에게 불리한 기사가 노출되지 않거나 논의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BBK 관련 의혹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도 네이버의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다.

댓글 일원화와 관련해서도 논란이 많다. 네이버는 모든 정치 기사의 댓글을 일원화해 개별 기사에 대한 네티즌들의 의견을 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당연히 댓글 건수와 조회수도 크게 줄어들었다. 네이버는 이처럼 댓글을 일원화할 경우 선거법을 위반할 잠재적인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네티즌들의 참여와 논쟁을 원천 차단한다는 비판도 많다.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네이버 입장에서는 굳이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편집을 하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대선 국면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 지지자들의 반발을 사지 않도록 지나치게 몸을 사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후발 포털 사이트들이 다소 선정적인 이슈를 전면 배치하는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이명박 후보 대선 캠프에서 뉴미디어 분과 간사를 맡고 있는 진성호 전 조선일보 기자가 “네이버는 공정성에 문제가 없고 다음은 주시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주목된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네이버 뿐만 아니라 다른 포털 사이트에서도 정치 댓글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선거대책위 총괄팀장을 맡고 있는 정 의원은 10월 17일 중앙선관위 국정감사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이버 선거법 위반을 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 포털 사이트 기사에 대한 댓글 달기”라며 “네이버 뿐만 아니라 다른 포털 사이트에도 적용할 수 있게끔 선관위 지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또 블로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나서 블로거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정 의원은 “올블로그처럼 여러 블로그를 링크하는 메타 블로그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언론도 아닌 것이 한나라당 후보의 네거티브 유포의 진원지로 활동하면서 사이버 테러에 가까운 선거법 위반을 저지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언론도 아닌 것이 네거티브 유포한다.”

정 의원은 특히 “블로그가 국내 블로그 사이트가 아닌 미국의 등 외국 사이트를 이용 블로그를 개설하여, 신원 사항을 감추고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선관위나 사이버 수사대의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선관위가 메타블로그 감시 활동에 더욱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로거들은 “언론도 아닌 것이”라는 정 의원의 발언에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연수씨 사례에서 보듯이 블로그는 이미 1인 미디어로 자리를 잡고 있다. 오히려 주류 언론의 틈새를 메워가면서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여론을 선도하는 파워 블로거들도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정 의원이 블로거들에게 보인 민감한 반응은 그만큼 이번 선거에서 네티즌들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주류 언론에 대한 불신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여론 조사 결과 지지율 50%가 넘는다는 이명박 후보가 유독 블로거들에게만 인색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주류 언론과 여론의 불일치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사례는 태터앤미디어와 블로터닷넷이 주최한 대선 후보 릴레이 인터뷰다. 태터앤미디어는 블로그 저작도구를 만드는 회사고 블로터닷넷의 블로터는 블로거와 리포터의 합성어다. 사회를 맡았던 김상범 블로터닷넷 대표블로터는 “오늘 이 자리에는 50명의 언론사 사장이 모였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선거법에 따르면 대선 예비 후보가 유권자들 모임에 참석해 지지를 호소하면 사전 선거운동으로 선거법 위반이 된다. 그 대상이 일반 유권자들이 아니라 블로거들이라도 마찬가지다. 다만 선관위는 만약 블로거들이 인터넷 신문의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면 기자회견 형식의 모임이 가능하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태터앤미디어가 블로터닷넷과 공동 주관하는 방식으로 행사를 주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블로터는 문화관광부에 인터넷 신문으로 공식 등록돼 있다. 태터앤미디어는 블로터닷넷과 공동으로 행사를 주관해 선관위 규정을 피해나갈 수 있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이유로 언론이 누렸던 특권을 블로거들도 누릴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들은 10월1일 문국현 후보에 이어 15일에는 권영길 후보를 인터뷰했고 29일에는 정동영 후보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다. 이명박 후보에게도 제안을 넣어둔 상태다. 정 의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언론도 아닌 것’들이 대선 후보에게 직접 질문을 던지고 이를 수많은 독자들과 공유하는 초유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바야흐로 유권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제 막 뿌리를 내리려는 시점이다. 분명한 것은 블로거들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 이들의 목소리를 구태의연한 선거법으로 막기 어렵게 됐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만약 언론이 제 역할을 했다면 블로거들이 선거법 위반을 무릅쓰고 게시물을 해외 사이트까지 옮겨 나르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블로그는 언론이 아니지만 언론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역할을 한다. 언론과 이들 1인 미디어의 경계도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이번 대선에서 우리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정치 참여의 새로운 실험을 경험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정치인의 이미지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올해 대통령 선거가 UCC 전쟁이 될 거라는 전망은 아직 절반 정도만 맞았다. 일반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가 그 어느 선거 때보다 활발해졌지만 이에 맞서는 정치권의 반발과 저항도 거세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변화의 흐름이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전쟁 역시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고 더욱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정환 기자 top@journalismclass.mycafe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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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mments

  1. 정말 공감가는 글입니다. 저희 블로그도 비슷한 경험을 겪었던 지라…선거법이 현재 여론통제에 대해 규제또한 하고 있지 못하고, 개인이 특정대선후보에 대한 글을 쓸때도 검열당하는 듯한 분위기는 당연히 이번 대선에선 뿌리뽑혀야할 사안일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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